송골재 너머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건너편 말바우 마을 앞 정류소 쪽 바라보니 어르신 서너 명이 앉아 계신다. 무주 올라가는 첫차를 타러 나오신 것이니 식전부터 서두른 것이 분명하다. “안녕하세요? 장날도 아닌디, 어디 가시려고 이리 일찍?” “소장님은 어디 다녀오신다요?” 반갑게 두 손을 맞잡으며 여쭈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얼렁 죽어지게 내비두라고 도장 찍으러 갑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 “여든이나 넘도록 살았응게, 이제 죽어도 아까울 기 항 개도 없어.”하신다. 괜히 새끼들만 고생이라는 꼬리표 뒤로 짧지만 가볍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준엄함 너머 어떤 유쾌함마저 느껴지게 했다.
자발적 자유의사(意思)에 따라, 본인이, 법에 정한 사업 수행 보건의료기관으로 가서 당신 손으로 직접 도장 찍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처방’을 내리기 위한 외출이었다. 알고 보니 자기 죽음 예비하러 가는 길인 것인데 그렇게 중요한 일을 이토록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씀하시다니! 게다가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돌아올 예정이라며 주민등록증까지 보여주시다니! 모두 잘 생각하신 일이라고 해야 하는지, 더 생각해 보시라고 말려야 하는지,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선 채 뒷이야기를 더 들었다. 어르신 한 분이 복지관에서 사전지시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하셨다. 마을에 돌아와 회관에서 전달 교육을 하셨고 의견일치 모아 가기로 날을 잡은 것이다.
“저기... 그런데요, 두렵지 않으세요?” 되묻는 나에게 ‘그런 결정 내 손으로 할 수 있어 겁나기 다행’이라 하신다. 시원 쌉쌀한 아침 공기가 소솔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나눌 때까지 미소가 떠나지 않던 어르신들. 적어도 팔순은 넘긴 인생 내공에 이른 사람만이 품어낼 수 있는 위엄찬 저력(底力)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보건진료소에 오는 분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다양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어머님이 생전에 설사 그런 결정을 하셨더라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루라도 더 사셔야죠.” “좋은 제도입니다. 어거지로 못 죽게 하다니? 그 정도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요.” “살려야죠, 그런데 이건 상황이 다르잖아요? 말도 못 하고 의식도 없는 환자가 된다면 고통 속에서 아무라도 죽기를 바랄 것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세상이라니!” “한 번 가면 못 오는 길이라 죽은 사람은 볼 수 없잖아요, 어쩌등가 오래 살아야 합니다.” 등등
법의학자로서 삶과 죽음을 반추한 책을 읽고 있다. 유성호 교수님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은하철도 999’,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이너 스페이스’, ‘유전자 가위’. 이들은 불사(不死) 혹은 영생(永生)을 위한 노력을 언급한 영화와 논문 제목이다. 기계 백작에게 희생당한 엄마의 복수를 위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구하러 우주로 떠나는 기차여행. 주인공 철이는 온갖 모험 끝에 영생을 이룰 시점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는 기계 인간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인공지능 바둑 천재 알파고를 만든 구글 엔지니어링 ‘레이 커즈와일’. 그는 2045년까지 잘 버티면 영생한다고 믿고 있다. ‘이거 실화냐?’ 싶은 깜짝 놀랄만한 발상이어서 황당한 기분도 들지만, 최신 의과학이 펼치는 미래 설계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수긍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10의 마이너스 9승(nano)보다 작은 로봇 액체를 세포 속에 주사한다. -무지막지한 과정 후- 나노형 과학자는 우주선(?)을 타고 몸으로 들어간다. 몸 밖에서는 그를 원격조종한다. 체내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지시한다. 변화무쌍하게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치료 모험이 전쟁처럼 펼쳐진다. 특정 DNA를 잘라내는 ‘유전자 가위’를 읽을 즈음에는 소름 돋는 절정으로 다가온다. 같은 폐암이라도 맞춤형으로 치료한다는 ‘지네틱 테크놀로지’는 그야말로 유전자를 끊고 자르는 편집 기술의 현란 지경이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까지 찾아내서 자르고 고치는 ‘나노봇(nanobot)’ 앞에서 죽음은 더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진정 죽어도 안 죽어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얼렁 죽어지게 그냥 내비두라!’는 마음으로 서명란에 도장을 눌렀을 망구(望九) 어르신의 결심과 결정 동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유쾌하면서도 단호한 태도에서 발견해야 할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죽음 너머 초월에 깃든 위대함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며칠 후, 그날 아침에 만났던 어르신 중 한 분이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노랑 민들레꽃 한 줌 내미신다. 꽃이 피는가, 꽃이 지는가 바라보지 않았던 이것들이 요렇게 귀여운 줄 몰랐단다. 정류장 이후 새로 마주하는 일상 한 조각,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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