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일주일 넘도록 변비로 힘들어하셔요, 보건진료소에 가면 처방받을 수 있나요?” 중풍으로 걷기조차 불편한 이씨. 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메꽃 같은 엷은 홍색 피부, 몇 달 전보다 훨씬 약해진 어르신의 근력이 눈에 띄었다. “논두렁 풀 깎다가 땅벌한테 쏘였는데 주사 있습니까?” 곧 보건진료소에 오신 김씨의 눈두덩은 말캉하게 부어 있었다. 어깨와 팔 아래로 퍼진 홍반은 울긋불긋 꽃밭이다. 성난 벌떼의 공격을 말해주었다. “무밭에서 작업하다가 찬물을 들이켰더니 배가 사르르 아프고 설사가 나고만요. 진료소에 계신가요?” 감기와 요통, 접촉 피부염, 수술 후 퇴원 환자의 드레싱 교환, 구강 내 실밥 제거.
업무가 마감되고 퇴근하려던 즈음이었다. ‘서울 시장 연락두절, 실종 신고로 소재 파악 중’. 손바닥 안으로 뉴스가 날아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래?’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다. 친구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는 “아이고! 그 위치가 얼마나 힘든 자리냐. 그분도 쉼이 필요할 거야. 골치 아파 바람 쐬러 가셨겠지. (웃음) 곧 오실 거야.”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는 실종이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버무렸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메시지는 불안해지더니 점점 위험해졌다. 자정이 지나고 속보가 떴다. 그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꿈도 비껴가고 현실도 비껴간 상황이랄까. 날이 밝자 고인이 사라진 이유가 불길처럼 번져 솟아올랐다. 허망하고 황당했다. 대화방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네. 인생사 이게 뭔지. 살고 싶은 의욕이 끊어지네.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 뭐지? 허탈하구먼. 너무 무섭다.” 날 선 얼음조각이 뾰족한 바늘이 되어 후두둑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겉돌았다. 우려 섞인 농담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는 말이 너무나 가난하게 느껴졌다.
보건진료소에 오신 어르신들은 TV 뉴스 소리를 키우고 더 집중하셨다. “아니, 왜 죽어, 죽기를. 나 같은 늙은이도 사는디. 저 자리까지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든가.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을 것인디. 머가 답답해서 죽었는가. 왜 죽어, 죽기를!” 사나흘 지나서는 “잘못이 없다면 왜 그렇게 끔찍한 일을 했겄는가? 변호사 양반잉게 아는 것도 많을 것인디!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저분은 죽음으로 증명한 것이 아니겄는가.” 일주일이 지나가니, “바위틈 소나무 한그루도 제 뜻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네. 모두 다 하늘 뜻이지.” 성급하게 쏟아지는 비난과 신중한 예견들.
놀라움은 관망으로 접어들었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얼마나 많은 논리와 관점이 쏟아질까. 무엇이 보이거나 증명된 것은 아직 없다.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나는 고인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언론으로 듣거나 보았을 뿐. 그럼에도 타자(他者)의 죽음은 이미 깊은 곳에 내재화되어 있었다. 내일이, 모레가, 그 후의 날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정체모를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아무 일 없다는 듯 과잉 행동을 보이고만 싶어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발로일까. 불안하고 무섭고 슬프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간호를 받고 싶어졌다.
오늘 많이 다녀가셨으니 내일은 환자가 줄어들겠지. 줄었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계절에 따라 다른 농작업, 여러 모양의 사고와 질환은 이어진다.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벌레들의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고령화의 그림자처럼 길어지는 퇴행하는 몸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그것 같은 일상, 단조롭고 때로 무료하리만큼 반복되는 동일 처방들. 보건진료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과 이야기들,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그 일들이 평화요, 기적이었구나.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보건진료소 주변을 거닐었다. 눈길 닿는 대로 채송화를 옮겨 심고 웃자란 코스모스 순을 집어준다. 접시꽃 씨앗을 뜯어 모은다. 쇠뜨기풀을 뽑았다. 울타리에는 갓길 더듬는 호박 덩굴이 수북하다. 담장으로 걷어올려 길을 만들었다. 잎새 사이로 주먹보다 큰 호박이 보인다. 일주일이 넘도록 변비로 힘들었다는 이씨는 괜찮으신지, 벌 쏘인 김씨는 안녕하신지, 배아프던 강씨는 이제 괜찮으신지. 안부처럼 업무가 시작된다. 판단하지 말자, 섣불리 말을 하지도 말자.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말자. 무슨 다짐도 아니고 각오도 아닌 것이 불뚝불뚝 일어선다. 실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이 일렁이는 달그림자 같다.
다시 아침이다. 보건진료소 문을 연다. 일상이 열린다. 습관처럼 마을길을 거닌다.
넓적한 잎사귀 아래 호박꽃. 풀섶으로 곯아떨어진 애호박 두 개, 힘없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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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신문] 106호(2020.08.03), 간호일기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