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일기
#시대예보_핵개인의시대_송길영_교보문고_2023
#너를서사하라
새해가 밝았다. 이전의 설렘보다 올해는, 내년에는 어떤 모습들이 다가올까, 기망(祈望)보다 우려(憂慮)가 저만치 더 앞서간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너는 이렇게 준비하라, 저렇게 대비하라.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헝클어진 늪으로 빨려들어가는 허우적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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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회원 추천으로 이 책과 마주했다. 느낌과 현상에 대하여, 아, 그렇구나, 공감하게 만든 오래된 과거와 ‘이미 와 버린 미래’에 대한 분석이 예리하면서 시원하다. 감기로 몸이 지치니, 마음까지 가라앉아 힘들었던 두어 달. 퇴근하면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 하루 마감이었다. 의욕마저 사라지니 내 영혼이 날로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차~암 길면서도 참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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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살고 있는 나와 이 책에서 말하는 이미 와 버린 미래의 거리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만큼이나 먼 이야기일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머리를 지나 내 가슴 속으로 과연 와 닿으려나. 의심했다. 반전이었다. 한 줄씩 읽어나가는 동안 공감했고 위안이 되고 위로도 받았다. 내 영혼에 잎사귀가 있다면 한 장씩 한 장씩 활짝 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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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같은 공간이 아닌 서재 안으로 가득 퍼지는 언어를 따라 읽으면서 엉킨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아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 이 느낌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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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이 난무하는 시대에 조금은 그 흐름에 스며들고 있네, 안도했다면 섣부른 착각일까. 빅데이터는 수평, 수직, 거미줄 같은 사선으로 무한대로 (퇴근도 하지 않는 채) 뿜어져 나온다. 투명한 알고리즘을 그림자로 남기며 끝없이 재생산 재탄생한다. 마인드 마이너의 분석은 상대를 모르는 채 걸어갈 때 느끼는 서늘한 공포가 밀려오듯 예리하고 때론 갑갑하기도 하다.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그래도 마음 놓이는 것은 작가의 ‘사람’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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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 사이에 냉정하기 짝이 없는 비정한 디지털 속에 온라인 결재시스템에서 서성이다 돌아서는 사람을, 스마트폰 기반 원격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장노년층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소외 구역에서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나 침묵하는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공정과 배려를 촉구하는 제언이 아침 빛조각처럼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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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장애인, 여성, 노약자, 외국인, K를 넘어선 서울러와 지방러, 노동 분야에서 벌어지는 학력과 임금의 격차, 정규직, 계약직, 기간제, 외주사 정규직, 외주사 계약직, 일용직에 이르기까지 고용 형태와 처우가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배려의 부재. 능력과 직무 차이가 아닌 갈등과 분배와 개인의 안정과 자존감을 배려하는 사회 시스템 부족에서 오는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적 사고의 경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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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중과 비난보다는 정당한 인정이 권위의 출발점이 되고, 이제 현대 사회는 진정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강조한다. <흩어지고, 쪼개지고, 홀로서야 하는>, 더 흩어지고 더 쪼개지고 더 홀로서야 하는 오늘과 미래의 <핵개인>들에게 미래를 위한 준비와 대비를 권언하는 단락들은 마치 큰오빠가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핵개인화 시대를 등반 중인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내미는 시대적 가이드라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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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따라잡기는커녕,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알아채지 못할 속도로 새 시그널이 발사되는 이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의 자녀들 미래는 어떻게 되려나, 답없는 자문을 해본다. 해답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재를 받아들이고 까르페디엠! 변화는 당연한 것이지, 이제 그걸 인정해! 미래를 너무 두렵게 생각하지 마! 스스로에게 답인양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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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보다는 그래도 ‘인간 서비스가 다시 프리미엄 시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나는 사람이고, 프리미엄급 사람이 되도록 '나를 서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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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획득해야 할 자립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래도 고민은 이어진다. 변화를 위한 ‘핵개인화’ 훈련을, 계속 계속, 계속하라는 조언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나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narrative)가 될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서사는 급조될 수 없고, 오직 시간과 진정성으로 만들어지니까. 그는 나같은, 인간다운 서툼과 여운은 없을 테니까.
결국, 나의 나됨을 조탁(彫琢)해야 하는, '나'의 영혼아!
네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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