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일기
무너진 다무락 아래,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것이다. 마로니에나무 옆에 반달 모양 돌담을 쌓기로 하였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돌이 자꾸 나온다. 땅 고르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지나가던 어르신이 한말씀 거드신다. 돌도 새끼를 낳능당께.
사나흘 지나면 여기저기 다시 고개를 내미는 모난 돌, 둥근 돌. 태울 수 있는 것이라면 긁어모았다가 낙엽처럼 타는 냄새라도 맡으련만. 군데군데 무더기가 마이산 아가탑 정도는 될 것이다.
모아진 돌을 큰 돌, 중간 돌, 작은 돌로 분류하였다. 마로니에나무를 축으로 나뭇가지 하나 세워 끈을 묶었다. 반원半圓을 그렸다. 중심에 먼저 큰 돌 하나를 놓았다. 경계가 될 만한 얼굴 넓은 돌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남편 혼자 들 수 없는 무게를 지닌 돌은 함께 들어 날랐다.
바닥부터 쌓기 시작했다. 이쪽을 고이면 저쪽이 기울고, 저쪽을 고이면 다시 이쪽이 기울었다. 납작한 돌을 주워 왔다. 그들은 큰 돌이 기울어져 생긴 공간을 메꾸었다. 어른처럼 흔들림 없이 의젓한 모습으로 서면 흐뭇했다. 풍파에 닳아 생긴 고운선과 문양이 드러날 때면 감탄까지 했다.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이야기 나누었다. 큰 돌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더 큰 돌이 필요한 것이 아니군. 작은 돌들이 도와줘야 하다니,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야. 더 작은 돌들은 중간 돌이 만나 생기는 바람길을 막아주는구나. 모양도 제각각. 그뿐인가. 어떤 것은 회색, 붉은 줄기 한 가닥 스친 흙색, 어떤 것은 검은색. 색색이 무한한 돌 세계라니.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네.
담을 쌓아가는 동안 내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과 마주했다. 존재와 존재, 그들이 얽힌 관계 가운데에 서 있는 나. 크다고 오만할 것도, 작다고 위축될 것도 없는 것이다. 오만하여라 위축하여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큰 돌인양 오만했고 때로는 작은 돌인양 스스로 위축되었구나. 누군가의 면모를 돋보여 주기 위한 메꿈 돌이 된 적은 있었나. 허물어진 마음에 돌담을 쌓자. 작은 돌이 되자, 더 작은 돌이 되자. 중간 돌이 되자, 큰 돌을 세워야 한다면 기꺼이 밑장으로 들어가자.
아픈 허리 편다.
하늘 한 번 본다.
가을 바다처럼 푸르른데,
낮달이 돛 달아
저 홀로 아득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