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하루

쓰는 사람의 마음 가짐

by 두썸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면,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보냈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면 즐겁게 쓰고, 별로였지만 그래도 잘 참고 해냈다는 문장을 남기고 나면, 이러저러해도 주어진 하루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서툴지만 정성 들여 쓴 글씨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모습을 보면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은 이 한 장을 남기기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써 내려갔구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들고 지치는 시기를 겪습니다. 그럴 때는 나를 지탱해 주던 평화로운 일상도, 늘 하하 호호하던 관계도, 심지어 건강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힘들어짐과 동시에 다짐했던 것들을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놓습니다.

선택의 영역에서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은 언제나 내가 추가로 더 해내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입니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할 역량이 된다면', '할 시간과 마음이 남아 있다면' 하겠다는 의미임에는 분명하지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거나 마감 기한을 넘긴다면 분명 큰일이 나고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선택의 저울 위에서 기록은 자주 밀려납니다. 저는 이 저울을 '할지 말지 저울'이라고 부릅니다.


[할지 말지 저울]에 올려놓기 전에 해야 할 일

기록 덕후라고 알려진 정조가 쓴 『홍재전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다만 내가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그것을 걱정하라.

기록에 있어 치밀함을 자랑했던 왕이라는 점에서 한 번, 그리고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행할 마음’이라는 말에서 두 번, 이 문장은 저를 두근거리게 합니다.

꾸준함을 유지하는 조건에 '정해진 시간'도 필요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행하는 것 자체가 최선을 다할 마음에 더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내 의지를 저울질하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은 '마음'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음이 가면 선택하게 되고, 선택이 쌓이면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나를 단단하게 다듬으며, 하루를 반짝반짝하게 닦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할지 말지, 쓸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쓰는 마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일단 자리에 앉아봅니다. 저울 위에서 고민하는 대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성실함까지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마음을 다하는 하루가 되길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기 쓰기를 며칠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매일이라니,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요?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내다 보면, 그 과정 속에서 반드시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재미는 종종 그런 뜻밖의 결과에서 찾아오지요.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지나쳤다면 흐릿하게 잊혔을 하루가 종이에 남겨지는 순간 선명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1년 동안 꾸준히 채워진 다이어리 한 권을 손에 쥐었을 때의 뿌듯함을 떠올려 봅니다. 그저 글을 쓰겠다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것이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큰일이 나지 않는 것보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더 아쉬운 법입니다.

끝까지 해내는 마음을 선택할 때 삶은 더 생생하게 기록되고, 차곡차곡 쌓은 결과물들이 결국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마음이 다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스스로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봅니다.


다짐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일어나, 내일도 성실하게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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