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관한 제목 없는 글
라디오는 생방송이 원칙이긴 하지만, 365일 같은 시각에 방송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때때론 미리 녹음해둔 녹음본을 송출하는 녹음방송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정교함으로 따지자면 아무래도 사후에 편집을 통해 많은 부분을 다듬을 수 있는 녹음방송이 더 완벽할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기까끼’, 효과음이나 음악을 내가 딱 원하는 그 타이밍에 맞추어 틀기에도 요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생방송에서 예상치 못하게 종종 벌어지곤 하는 방송사고도 원천 차단할 수 있고, DJ나 제작진의 실수도 편집으로 걷어낼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생방송은 완성도 면에서 정교하지도 않을뿐더러 방송사고의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있는 위험천만한 선택인 셈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생방송 할래? 녹음방송 할래?’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 무조건 생방송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라디오 제작진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을 것이다. 생방송이 괜히 라디오의 꽃이 아니다. 세상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지만, 생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란 생방송 외에 다른 방법으론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특유하다.
입사 2년차에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을 연출한 적이 있다. 뉴스라는 건 시시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매일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조간신문을 읽어보고, 밤사이 사건사고를 체크하고, 경색된 북미관계에 변수는 없었는지(당시 한국 시각으로는 한밤중일 때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북한을 도발하고, 북한 언론은 공개 경고방송으로 되받아치는 외교 기싸움이 매일같이 반복됐다)를 확인하려면 적어도 새벽 3시 반에는 일어나 출근해야했다.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집을 나오면, 서울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진다. 멀끔히 뻗은 도로에 달리는 차라고는 나뿐이고, 도로 양 옆에 불 켜진 건물은 하나도 없고, 눈 앞에는 저 멀리까지 네 다섯 개의 신호등이 보이는데 전부 동시에 노란불만 점멸하고 있다. 분명 서울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데도 인적 드문 시골길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회사 사무실에 들어설 때도 비슷했다. 불 꺼진 복도를 지나 형광등을 켜면, 낮에는 수십 명이 북적거려 정신없을 지경인 사무실이 텅 빈 채로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매일같이 반복하는 출근인데 그 느낌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어둡고, 차갑고, 축축하고, 외로웠다. 그토록 꿈에 그려온 라디오PD라는 일을 하게 되었으면서도 새벽 출근길은 설레기보다는 늘 그랬다.
내 기분과는 별개로 새벽 6시 약속된 시각이 되면 어김없이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은 시작된다. DJ는 힘찬 목소리로 간밤에 안녕히 주무셨냐며 아침 인사를 건네지만 청취자들이 보내는 문자가 한데 모여 보이는 문자창엔 별다른 응답이 없다. 시사프로그램은 오락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청취자 반응이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사건사고 소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시사프로그램 특성상 청취자들이 저마다의 반응을 마구 쏟아낼 유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사프로그램 앞으로 도착하는 문자란 그저 모두가 분노할 만한 뉴스에 화가 난다는 문자, 모두가 슬퍼할 만한 뉴스에 슬프다는 문자, 모두가 축하할 만한 뉴스에 기쁘다는 문자 정도다. DJ가 어떤 주제로 질문을 시작하면 그 주제에 관하여 문자가 물밀 듯 쏟아져오는 오락프로그램에 비하면 상당히 건조한 문자들인데다가 그 숫자도 매우 적다. 오락프로그램을 연출할 땐 구체적인 청취자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생방송 중에 힘을 얻곤 하는데, 시사프로그램에선 그럴 일이 잘 없었다.
그러던 한 겨울의 어느 날, 동트기 전의 캄캄하고 단단한 암흑 속에 파묻혀 생방송을 하던 중 이었다. 작가님과 함께 라디오 생방송 부스의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이런 대화를 했다.
“작가님, 전에 낮에 방송할 때엔 저기 건너편에 분명 건물이 몇 개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해도 안 뜨고 건물에 불도 다 꺼져있으니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건물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그러게 다 쌔까맣네. 근데 출근하기에 이른 시각이긴 하잖아.”
“이 시각에 깨어있는 사람이 진짜 우리밖에 없는 걸까?”
사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이벤트를 해보기로 했다. 새벽 6시가 막 넘은 지금, 청취자들이 어디에서 우리 방송을 듣고 있는지 인증사진을 받아보자는 거였다. 좀 귀찮은 일이긴 해도 몇 명은 보내주겠지 싶었다. 앵커는 제작진과 미리 약속한 타이밍에 이벤트를 고지했다.
“여러분, 어디서 듣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여러분 눈앞에 있는 광경을 찍어서 보내주세요.”
잠시 후, 전에 없이 문자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평범한 일상이 묻어있는 사진이 첨부된 문자가 쏟아졌다. SNS에서 자주 보이는 세련되고 예쁜 사진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거친 사진들이었다. 이른 시각에 김포의 어느 도로를 정비하고 있다며 텅 빈 도로에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셀카를 보내주신 미화원, 통근이 한참 걸려서 늘 이 시각에 출근한다며 캄캄한 경인고속도로 사진을 보내주신 회사원, 시화공단에서 야쿠르트를 배달중이라며 배달차 사진을 보내주신 프레시매니저, 그리고 배송지 앞에서 택배상자를 찍어주신 택배기사, 경비초소에서 바라본 주차장사진을 보내주신 청경직원, 텅 빈 계산대 사진을 보내주신 편의점 알바생, 독서실에서 새벽 공부를 시작한다는 고시생.... 물론 대형 오락프로그램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많은 숫자의 문자가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보내온 사진에는 나를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출근하며 집어든 조간신문은 이미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누군가 배달해두고 간 것들이었고, 멀끔하게 청소된 도로는 내가 운전하기 이전에 이미 누군가 정비해뒀을 것이다. 회사 건물 경비초소와 1층 안내데스크에서 인사를 건네주시는 청경직원들은 밤새 자리를 지켰을 테고, 불을 켜면서 들어선 사무실은 사실 내가 출근하기 전에 누군가 청소를 마치고 단정하게 불을 꺼둔 곳이다. 새벽이 외롭다는 불만은 오만이었다. 차갑고 축축하다고 불평하기엔 새벽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빚지고 있었다.
그간 나는 삶과 생활의 경계에 예민했다. 생활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들, 이를테면 문학과 음악 같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칭송해왔다. 생활은 생계와 결부되어 사람을 퍼석하게 만드니, 삶 전체가 생활만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각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돈을 벌기 위한 ‘생활’이라서, 별로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서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취자들이 보내주신 사진들 앞에서는, 그러니까 그들의 생활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생활이야말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고,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고유하게 존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방송을 하루하루 거듭해 가면서 가장 귀한 깨달음을 꼽으라면 이걸 꼽겠다.
이제는 라디오가 별로 세련되지도 고상하지도 않아서 좋다. 라디오라는 게 미술관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흘러나올 배경음악이라서 좋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지겨울 정도로 일상적인 날에 듣게 되는 매체여서 좋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다시 그 때처럼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하라면 여전히 피곤하고 졸리기는 할 거다. 하지만 몸은 고단할지언정 함부로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얼마나 춥든 얼마나 어둡든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이 생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머리 위로, 그리고 수많은 청취자들의 머리 위로 빨간 실이 나와 같은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이미지를 그려본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안정감과 소속감, 나에게 라디오 생방송이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