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비염이 심해서 귀가 잘 안들리던 적이 있었다. 두 귀 모두 그런게 아니라 한쪽 귀만 그래서 꽤나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때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부엌에 달린 소형 TV에 왼쪽 귀, 오른쪽 귀를 대보고 어느 쪽이 더 잘 안들리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은지 10초나 됐을까. '빡-' 소리와 함께 갑자기 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듣기 싫다고 시위하는거냐고, 버릇없이 뭐하는 짓이냐고, 벌개진 눈을 부릅뜨고 아빠가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한쪽 귀가 안들려서 살펴보는 중이었다고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 말은 힘이 없었으며, 나는 순식간에 '버릇없는 행동을 거짓말로 덮으려는 기집애'가 됐다.
그때로부터 20년 정도가 지난것 같은데, 그때 처음 맞은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억울한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채로 남아있었다. 그 시절의 억울함은 지금 '분노'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꽤나 강압적인 환경에서 억눌려 지내온 탓일까.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 그 결핍은 여실히 드러났다.
연애를 시작해도 오래 가는게 어려웠다.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면 싸울 문제를 만들어서 시비(?)를 걸었고, 어쩌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게는 내가 어떤 점이 좋은지 진심으로 궁금해 여러번 물었다.
나를 좋아해서 시작한 연애는 더더욱 오래 못갔다. 상대방의 애정 표현이 오히려 부담스러웠고,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에게 다른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거짓 사랑을 표현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취업 준비하는 동안에는 내가 하등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죽음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었다. 면접을 볼 때는 면접관의 사소한 질문에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으며 늘 주눅들어 있었다.
나는 그만큼 '사랑받지 않는 나', '거부당하는 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적응하고 있었던 거다.
사랑 받을 수 없는 형편 없는 존재. 그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정한 내 모습이었다.
부모님을 탓하려고 쓴건 아니다. 부모님이 늘 그러던 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주 큰 문제 없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로 대략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도 했고, 지금의 나는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다만 부모가 인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성인이 됐다고 해서 없어진다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치유되는게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 나는 이를 치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상담 센터를 다녔고, 일기를 쓰며 부정적 감정을 털어냈다.
사실 이렇게 노력해도 그때의 감정이 불쑥하고 올라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점이 그렇게 화가 나는지를 묻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그 시절의 내가 어두운 방 안에서 쭈그려 앉은 채로 울고 있다. 그럼 나는 그 아이에 눈 맞추며 위로를 건낸다.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이제 다 끝났다고. 어른이 된다는건 그런게 아닐까.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너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없다고 말하는 것.
쓸모 없는 존재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존재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