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10년.”
이 다섯 글자가 내 이력서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내 시간은 온통 집 안에 묶여 있었다.
학교 준비물 챙기고, 하교 시간 맞춰 간식 차려놓는 일상.
누가 보면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이라 했을 거다.
그런데 내 안에서는 늘 같은 목소리가 울려댔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아야 하지?”
집은 작고 빌라 벽지는 군데군데 색이 바랬지만,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어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40이 넘어가면서 나는 점점 ‘나’라는 이름을 잃어가는 게 두려워졌다.
다시 채용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41세, 여자. 전 직장 퇴사 후 경력단절 10년.”
경험은 있지만, 너무 오래 비워진 시간.
‘지원 자격: 35세 이하’라는 문구에는 매번 걸린다.
메일함은 답이 없고, 휴대폰은 잠잠하다.
그러다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실인데요.
지난번 지원하신 주 14시간 근무 자리, 면접 보러 오실 수 있을까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네, 갈 수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엄마 면접 보러 간다!”
큰딸이 물었다.
“엄마, 합격하면 출근하는 거야?”
나는 순간 목이 메었다.
“응. 엄마도 이제 출근하는 거야.”
면접은 짧았다.
“주 14시간, 행정사무. 어려운 건 없어요.”
면접관의 말에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합격 문자가 도착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오, 축하해. 드디어 사회로 복귀하네. 근데 월급은 얼마나 돼?”
“주 14시간에 최저시급이지. 그래도 시작이잖아.”
“그래, 뭐.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 봐.”
첫 출근 날, 사무실 문 앞에서 숨을 고르다 들어갔다.
낯선 이들과 모인 사무실이 눈물겹도록 그리웠다.
정신없이 첫 날이 지나갔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생했지. 근데… 저녁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 미안, 오늘은 제대로 못 했어. 냉장고 반찬으로 먹자.”
남편은 씩 웃으며 말했지만, 그 속마음은 읽혔다.
“그래도 일한다고 집안일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않냐?”
시어머니도 전화를 걸어왔다.
“애들 크는 게 먼저지, 뭔 돈 번다고 힘든 일을 해.
돈은 네 남편이 벌면 되잖아.”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그나마 내 편은 친정엄마였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행복해야 애들도 행복한 거야.
돈보다는 네 인생을 위해서도.”
엄마 말에 위로를 얻고 용기를 냈다.
월급은 월 40만원 내외, 집안일은 산더미..
집안에서의 서열은 월급에 비례했다.
아이들은 부전승이니, 내가 제일 낮은 서열이었다.
서열도 제일 낮은 주제에 돈도 조금 벌면서
예전보다 가정에 소홀해진 내 모습은 내가 봐도 가성비가 떨어졌다.
그래도, 잘 해내고 싶어 모두 잠든 밤에 노트북을 켠다.
짧은 근무시간에 비해 일은 턱없이 많으니 잔업을 해야 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엄마라는 자리, 아내라는 자리,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자리…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