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의 어느 날.
그날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는 정규직을 고민하며 회사로 향했다.
오전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사무실 책상 위로 스며들었고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서를 정리했다.
청소를 마치고 오신 여사님들과의 수다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교류도 없었던 옆집 사람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옆 집 사는 사람인데요. 이 우편물 받으셨어요?"
나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이웃의 얼굴을 그제야 보게 되었다.
공.. 매..
그 이웃은 근심과 당황이 묘하게 섞인 얼굴로 말했다.
"우리 집이 공매 예정이라네요. 여기 빌라 전체도 가압류가 걸려있어요.
건물주는 연락두절인데, 몇 년째 세금도 체납하고 근저당도 안 갚고 있다고 하네요."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건지, 꿈인 건지..
남편은 동료들과 동네에서 한 잔 하는 중이었다.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시라도 같이 머리를 맞대어했기에
전화를 걸었다.
"빌라가 가압류 걸리고 공매로 넘어간다고?"
당황하면 메아리처럼 내 말을 따라 하는 남편.
남편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가진 게 너무 없어 월 30만 원 원룸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겨 10평 남짓한 8천만 원 투룸으로 이사 갔고.
또 가족이 늘어 15평 남짓한 1억 2천짜리 투룸을 구했다.
법인 명의인 게 찝찝했지만, 중계인은 이 정도 근저당은 양호하다고 추천했다.
이 빌라에서 10년을 버텼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안정적인 보금자리였고,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는 돈을 모으기에는 최적이었다.
무슨 아파트에 사는지 물어보는 반친구들에게
주저 없이 우리 빌라를 알려주던 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모았다.
이제는 슬슬 아파트를 알아봐도 될 참이었다.
참, 무탈하게 10년을 버텼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
하루, 한 주, 한 달..
빌라 입주민들끼리 머리를 맞대보고, 증거도 모아보고
여러 기관을 찾아가 봤지만 소용없었다.
집주인은 다른 사기 혐의로 도주 중이라고 했다.
또, 법인은 폐업하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돌아서서 창문 너머 아파트촌을 바라보았다.
공매, 가압류, 체납, 사기…
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굴러갔다.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자기계발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이다.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고민이 말끔히 해결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