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을 쉴 수는 없다.
아직 정규직은 무리이고, 근무시간이 조금 더 긴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보니 넣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이력서를 보내고 기다리기를 하루, 이틀.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지원해주신 학원입니다. 면접 가능하실까요?"
주 4일 일 6시간. 주휴수당.
주휴수당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니.. 감격스러웠다.
학원 서류 정리와 수강생 상담 일정 잡는 일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은 자신 있으니 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첫 출근 날이 생각난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 잘 풀릴 것이다.'
주문을 걸 듯 중얼대며 학원문을 들어섰다.
그런데.
인수인계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국비교육이라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은데 아무 자료도 없다.
직원이라곤 나와 강사 뿐.
강사가 모르는 건 고용노동부 담당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거니 ‘또 너냐’는 말투다. 한 두 번 건 게 아닌가보다.
강사는 강의실에 들어가고, 나는 혼자 데스크에서 고군분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국비교육 관련 책자가 있어 틈 나는대로 정독했다.
내 실수로 수강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일은 점차 손에 익어갔지만
마음은 어떻게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놈의 되지도 않는 자존심 때문에..
출근하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배달 용기들.
저녁마다 원장님의 가족들이 여기서 식사를 하나보다.
손주라도 오는 날이면 과자봉지에 부스러기들..
점심때면 강사들 도시락을 찾으러 가는데, 내 도시락은 없다.
도시락을 강사들에게 주고 나면 내 점심시간은 조금만 남는다.
나를 써 주심은 감사하지만, 너무 막 쓰는 건 거절하고 싶었다.
얼마만큼의 자존심을 버려야 살 수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상황에서 사표를 쓰면 가족에게는 큰 부담일 것이다.
다시 이직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기술을 배우기도 늦었다.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