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전화가 울렸다.
"이력서 주신 곳입니다. 급히 면접을 봤으면 하는데, 내일이라도 가능할까요?"
주말에 면접이라니 의아했지만 가겠다고 말했다.
외식업 분야인데, 가게 분위기도 좋았고 사장님의 마인드도 좋았다.
망설임 없이 출근일을 약속했고, 학원일을 그만뒀다.
사무실 직원은 나뿐이었다.
인수인계 없이 시작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한 달이 흘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어진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월급이 통장을 스쳐갔다.
경력 단절 후 처음 받아보는 7자리 숫자의 월급.
직원이 나 혼자라 여러 분야의 일을 맡았다.
“뭐든 해보면서 업무 범위를 넓혀보세요. 업무는 많이 익혀둘수록 좋습니다.”
덕분에 외식업 전반을 배우게 되었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더 이상 이 빌라에 묶여있기 싫어 부동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전세보증금은 포기하고 가진돈으로 아파트를 보다 보니 마음에 차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는 많이 무리를 해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흐른 어느 날, 부동산 소장님의 전화가 왔다.
높은 층에 뷰도 좋은 집이 나왔는데, 한번 보겠느냐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좋은 위치의 아파트를 사야 팔 때도 수월하다고 하셨다.
1억 2천도 날린 판에, 더 이상의 무리는 안된다며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그 집이 보고 싶었다.
약속을 잡고 저녁 즈음 신랑과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산 밑이라 등산로도 가깝고 시티뷰에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기가 막히는 집.
이 도시에서 진행하는 불꽃축제도 멀리서나마 보이는 집.
초중고가 지척에 있고, 도서관도 5분 거리라는 집.
울 엄마가 내 집이 되려면 어떤 느낌이 온댔는데,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제시한 가격은 무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랑과 그 집은 무리라며 말을 끝냈지만,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고민 끝에 집주인에게 편지를 썼다.
진심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골라가며 어렵게 쓴 후 소장님 편으로 집주인에게 전달했다.
그날 오후 5시 무렵, 소장님의 전화가 왔다.
"사모님, 됐어요!"
다음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그 해의 마지막 달 중순쯤으로 이삿날을 정했다.
입주청소와 밥솥을 먼저 알아보고, 소금과 팥도 사두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애증의 빌라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매달 원금의 몇 배나 되는 이자를 갚고 살지만, 매일 감사했다.
집으로 오는 길이며, 아파트 정문, 화단의 나무 하나하나까지 다 감사했다.
계속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날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