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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쓴삘 Sep 06. 2024

우리 아이들은 걸음마가 많이 느렸습니다.

짧은 글 시리즈

첫째가 어릴 적 일이다.

걸음마가 많이 느긋하길래 나도 느긋하게 기다렸다.

양가 부모님들이 너무 느리다고 걱정하셨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받은 발달검사에서도 아무 이상 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돌이 지나고 6개월 뒤,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진료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에 소아정형으로 유명한 대학병원이 있었다.


대기만 몇 주,

그렇게 의사를 만나고 선천성고관절탈구 진단을 받았다.

18개월이나 돼서 절개하고 뼈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아직 손에 만져지는 뼈들이 너무 몰랑해 조심조심 안고 보듬었던 첫째의 몸에 칼이 들어가야 된단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 엄마, 엄마. 울지 마, 애기 튼튼하게 해 주려고 온 거잖아. 이거 치료하고 해병대 보내야지! 그렇게 될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요. 집도 가까우니 더 좋네. 내가 빨리 고쳐줄게요.


얼마나 감사하나 말인가.

진단 내리고 처방하기에 바빴던 선생님들 앞에서 나도 조급해져하고 싶은 말도 꾹 참은 적이 많았는데, 

이 선생님은 얼마든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해 주시고 위로까지 해주셨다.

우리 첫째가 딸이긴 하지만, 선생님이 해병대 보내라면 꼭 보내고 싶을 정도로 감사했다.


수술예약까지는 7주나 기다려야 했다.

간호사가 집도 가까우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했다.

위로받았던 마음이 그 말에 또 주저앉고 말았다.

백일 전에만 발견했어도 수술은 안 했을 텐데..

아니, 울 엄마가 병원에 가보랬을때만 갔어도..

아니, 돌에도 못 걸었는데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나는 엄마도 아니야.


그날 밤 임신 7개월 차였던 나는 무지했던 나 자신을 마음껏 괴롭히지도 못하고 가슴만 쳐댔다. 

그리고는 마음을 담아 의사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다음날 전해드렸다.

그리고 몇 일 후 저녁, 

"어머니, 수술 하나가 취소됐습니다! 내일 준비하세요!"

그렇게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았다.


나는 거의 만삭이라 아이를 수술실로 데려다줄 수가 없어서 신랑이 다녀왔다.

아이를 안은채 마취제를 투여하니 금세 온몸에 힘이 빠져 수술대에 조심히 눕히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병원 2층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더니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둘째가 어릴 적 일이다. 

역시나 걸음마가 느렸다. 

발달검사 때마다 고관절탈구인지 검사해 달라고 요청했고, 첫째를 봐주신 교수님께 데리고 가 검사도 받았다.

매번 정상소견이었다. 

그러다가 16개월 때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걸음걸이가 영 불안했다.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뒤뚱뒤뚱 걸었다. 

밤마다 관련 카페를 가입해 증상을 검색하다가 걱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아이의 증상이 근육병이나 뇌질환 쪽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고, 소아정신과와 소아재활기관을 찾아다녔다. 

소아정신과에서는 아직 너무 어려서 진단을 내리거나 검사하기는 어렵겠다고 했다. 

소아재활기관은 아이의 움직임을 보더니 재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육병은 아니냐고 먼저 얘기를 꺼내니 갑자기 상담실 문을 닫더니 그런 진단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상세히 물었다. 그냥 카페에서 글을 보고 내가 혼자 생각한 거랬더니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재활의 스케줄이 달라질 거고 견적은 이정도까지 생각하라고 말했다. 문까지 닫아가며 비밀스럽게 얘기할 만큼 심각하구나. 그런데 견적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마침 또 이사 간 근처에 소아재활로 유명한 대학병원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지는 않으니 재활을 시작해 보자고 했고, 그렇게 1년간 주 3~4회 재활을 진행했다. 우리 애와 스케줄이 같아 재활실 벤치 앞에서 늘 만나던 언니가 있었는데, 우리 애들이 나중에 어린이집에 다닐 수는 있을지 함께 많이 걱정했었다. 



첫째가 어제 12번째 생일을 맞았다. 

3학년때까지 받던 뼈 정기검진은 졸업하고, 얼마 전 줄넘기 학원에서는 주니어로 승급했다. 

어릴 적 뼈수술했다고 양가에서 뼈에 좋은 음식들을 하도 많이 해주셔서 키가 상위 10%다. 

몸무게도 상위 10%다. 아이고..


둘째는 너무 뛰어다녀서 문제다.

메뚜기 같다.

그만 좀 움직였으면 좋겠다. 

입이 짧아 키도 평균이고 몸무게는 미달이다. 그렇게 움직여대니 살이 붙겠니..

그때 만났던 언니네 아이도 어린이집을 거쳐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 언니랑 마침 같은 동네여서 등산 베프가 됐다. 


다음에 이사를 가면 병원이 없는 동네에 가야겠다. 

이거 원, 뭐 잘하는 병원이 집 근처에 있으니 다 신세를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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