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탭은 나에게, 난 멀티탭에게 길들여진다.
짧은 글 시리즈
요즘 어린 왕자를 읽고 있다.
중고서점에 갔는데 그 책이 딱 눈에 띄었다.
어릴 땐 이 책이 지루해서 완독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린 왕자가 이토록 흥미진진한 책이었나.
가슴이 쿵쾅거릴 만큼 설레고 재밌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감정들이 많았다.
구절구절 무슨 말인지도 이젠 알 것 같았다.
특히 길들여진다는 거.
이 감정을 우리는 흔히 느끼는 것 같다.
우리 사무실은 요즘 이사준비로 바쁘다.
멀티탭이 필요해 창고에 굴러다니던 더러운 멀티탭을 가져와 한 몇 달 잘 썼다.
이삿짐을 싸는데, 왠지 이 멀티탭이 새 사무실에서도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티슈로 열심히 닦고 먼지를 불어냈다.
이토록 더러운데 지금껏 손질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나는 이제 이걸 길들인 거다.
이 물건도 나를 길들인 것 같다.
누가 가져갈까 봐 내 이름까지 쓰고 내 이삿짐에 넣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 멀티탭이 편했으면 좋겠다.
이사 가면 멀티탭 바닥에 쿠션을 깔아줘야겠다.
다이소에 들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