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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IKwMC5GRho
안녕하세요. 제 이야기를 듣겠다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남한테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70이 넘은 나이에 이런 사연을 털어놓다니... 근데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저는 올해 일흔두살입니다. 두 딸을 키우면서 반평생을 혼자 살았어요. 남편이 있긴 하지만... 아니, 법적으로만 남편이라고 해야겠네요. 진짜 남편 같았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거든요.
모든 게 시작된 건 50년 전이었어요. 저희 때는 연애결혼이 흔하지 않았잖아요. 부모님께서 맞선을 보라고 하셨을 때, 저는 그냥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스무 살이었죠. 요즘 아이들보다 훨씬 어렸던 것 같아요. 세상물정도 모르고, 결혼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으니까요.
맞선 본 남자는 스물여섯 살이었어요. 키도 크고 얼굴도 괜찮았어요. 말수는 적었지만 나름 점잖아 보였고요. 그때는 그런 게 좋아 보였거든요. 조용하고 진중한 남자. 부모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고, 상대방 집안에서도 좋다고 하셨대요.
"딸아, 좋은 인연이다. 시댁도 괜찮은 집안이고."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저는 정말 믿었어요.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사랑하는 남편과 예쁜 아이들을 낳아서 따뜻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결혼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어요. 그때는 원래 그랬거든요. 맞선 보고 마음에 들면 바로 결혼날 잡고. 저희도 맞선 본 지 두 달 만에 결혼했어요.
결혼식 당일, 꽃분홍 한복을 입고 거울을 보는데 정말 예뻤어요. 스무 살의 신부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린애였죠. 그런 어린애가 무슨 결혼을 하겠다고...
남편도 멋있어 보였어요.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참 근사했거든요. 하객들이 "잘 어울리는 부부다", "행복하게 살아라" 이런 축복의 말들을 해주셨을 때,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시댁으로 갔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어요. 시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거든요.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소 뒤에 다른 속셈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몰랐죠.
"어서 와라. 우리 며느리 왔네."
시어머니는 저를 보더니 위아래로 훑어보셨어요. 그리고 뭔가 만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들 낳을 만한 며느리' 인지 보신 거였던 것 같아요.
시댁은 생각보다 큰 집이었어요. 안채, 사랑채가 따로 있는 한옥이었거든요. 신식 집도 아니고 정말 옛날 집.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결혼식 다녀온 첫날부터요.
저는 당연히 남편과 함께 방을 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따로 자는 게 좋겠다."
뭐, 첫날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부가 바로 며느리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래서 저는 작은 방 하나를 배정받았어요. 남편은... 시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주무셨어요.
그게 이상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워낙 순진했거든요. 결혼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스무 살짜리가 뭘 알겠어요.
첫날밤이 지나고, 둘째 날도 똑같았어요. 셋째 날도, 넷째 날도. 일주일이 지나도 남편과 같은 방을 쓰지 못했어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어머니, 저희는 언제쯤..."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시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몸이 약해서 여자 기운에 눌리면 안 된다고 점쟁이가 그랬다. 조금 더 기다려라."
점쟁이요? 그런 말을 듣고도 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요즘 같으면 말이 안 된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시어머니 말이 법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더 많아졌어요. 남편이 저한테는 말을 거의 안 하는 거예요. 밥 먹을 때도, 마당에서 만날 때도 눈도 잘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신혼부부가 이럴 수 있나?'
속으로는 이상했지만, 입으로는 말 못했어요. 남편이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시댁 생활이 시작됐어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미혼인 시누이 둘까지 총 다섯 식구 뒷바라지를 혼자 다 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어요. '며느리니까 당연한 거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남편과는 여전히 따로 잤어요.
어느 날 저녁, 용기를 내서 시어머니께 다시 여쭤봤어요.
"어머니, 저희가 언제쯤 같은 방을 쓸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시어머니 표정이 확 굳어지시는 거예요.
"급하게 굴지 마라. 우리 아들한테서 기운을 빼앗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친정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그때는 시집가면 친정은 남의 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혼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남편과 같은 방을 썼어요. 시어머니가 "오늘 밤은 괜찮다"고 허락해주셔서요. 그것도 딱 하룻밤. 그 다음 날부터는 또 따로 잤어요.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시어머니 허락이 있을 때만 남편과 같은 방을 쓸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 식으로 지내다가 결혼 일 년 만에 임신을 했어요. 처음 입덧을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드디어 우리 아이가 생겼구나' 싶어서 정말 행복했거든요.
시어머니도 처음에는 좋아하셨어요.
"며느리가 일을 제대로 하네. 빨리 아들 낳아라."
아들. 벌써부터 아들 얘기였어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생겼다는 게 좋았어요.
열 달 동안 정말 조심히 지냈어요. 몸에 좋다는 건 다 해 먹고, 힘든 일도 피하고. 시어머니도 그때는 좀 챙겨주셨거든요.
"아들 가진 며느리는 조심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지만요.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출산일이 다가왔어요. 진통이 시작됐을 때, 시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아들 낳아야 한다. 딸 낳으면 큰일 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딸이었어요.
딸을 낳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확 바뀌었어요. 시어머니 얼굴이 돌같이 굳어지시더라고요.
"딸이라고? 딸을?"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해요. 실망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차갑고 무서웠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아이를 보더니 그냥 돌아서서 나가버렸어요. 아무 말도 없이.
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이 집에서 제가 어떤 존재인지. 아들 낳는 도구였다는 걸. 딸을 낳으니까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죠.
첫딸을 낳은 다음 날부터 지옥이 시작됐어요.
"딸이나 낳아놓고 뭐가 그리 당당하냐. 인간 대접 받으려면 아들을 낳아야지."
시어머니는 매일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밥을 먹을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아이를 돌볼 때도.
"가시나 하나 낳아놓고 뭘 바라냐. 니 집으로 가거라."
가시나라고 하셨어요. 갓 태어난 제 딸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더 충격적인 건 시어머니 본인도 딸을 여섯 명이나 낳으셨다는 거였어요. 그러고서 일곱 번째에 겨우 아들 하나를 낳으신 거죠. 그게 제 남편이었고요.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너는 첫째부터 기껏 딸이냐."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저는 참았어요. 내가 잘못했나 싶어서요. 정말 순진했죠.
첫딸이 돌이 지나고 또 임신을 했어요. 이번엔 아들이겠지 싶었거든요. 시어머니도 다시 기대하셨어요.
"이번엔 아들이어야 한다. 꼭."
하지만 둘째도 딸이었어요.
둘째 딸을 낳은 순간, 시어머니가 하신 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것도 딸이네. 너는 진짜 쓸모없구나."
그때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된 거예요.
둘째 딸을 낳고 나서부터는 정말 사람 취급을 안 받았어요. 시어머니는 저를 보면 혀를 차시면서 말씀하셨거든요.
"딸을 둘이나 낳아놓고 뭔 낯으로 밥을 먹냐."
밥상에 앉으면 그런 소리를 듣고, 설거지를 하면 또 그런 소리를 듣고. 하루 종일 그런 소리만 들었어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남편이었어요. 시어머니가 저를 그렇게 대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예요. 그냥 모른 척, 안 들린 척. 심지어 가끔은 시어머니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했어요.
"아들 낳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남편도 가끔 그런 말을 했거든요.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이 성별을 제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딸이라고 해서 덜 소중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이 집 사람들은 딸을 마치 재앙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첫딸 미영이와 둘째 딸 미숙이는 정말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하지만 할머니한테는 사랑받지 못했죠. 오히려 구박받았어요.
"가시나들이 왜 대청마루에 나와."
아이들이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야 했고요.
그런데 제일 힘든 건 남편이었어요. 아이들한테도 관심이 없는 거예요. 아빠라고 불러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놀아달라고 해도 "엄마한테 가라" 이렇게만 말하고.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이 남자는 정말 나를 사랑한 적이 없구나.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구나. 그냥 어머니가 시키니까 결혼한 거고,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을 낳지 못하니까 저와 아이들을 귀찮게 생각하는 거구나.
그래도 저는 참았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이혼이라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 시절에 여자가 이혼하면 갈 곳이 없었어요. 친정도 부담스러워했고, 사회적으로도 이혼녀는 손가락질받는 존재였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참고 살았어요. 하루하루 버티면서.
그런데 시댁 생활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시어머니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시누이들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시누이가 여섯 명이었어요. 큰언니, 둘째언니, 셋째언니, 넷째언니, 다섯째언니, 막내언니. 그 중에 막내언니만 미혼이고 나머지는 다 결혼해서 따로 살았는데, 자주 친정에 들렸어요.
그럼 그때마다 제가 할 일이 늘어나는 거예요. 시누이들 빨래, 아이들 기저귀 빨래, 밥해서 갖다 드리고, 설거지하고. 거의 식모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진짜 기가 막힌 건 시누이들도 저를 무시했다는 거예요.
"야, 올케. 내 옷 빨아놨니?"
"우리 아이 기저귀 어디 뒀어?"
이런 식으로 반말로 명령했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형님이라고 부르는 저한테 그렇게 대하는 게 정상인가요?
특히 막내 시누이는 진짜 심했어요. 저보다 두 살밖에 많지 않으면서 완전히 하인 부리듯이 했거든요.
"엄마 말 들어. 아들 못 낳으면 우리 집 망한다고 했어."
이런 말까지 하면서 저를 압박했어요.
그런데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남편 태도였어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저를 그렇게 대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예요. 심지어 가끔은 같이 웃기까지 했어요.
"애들 엄마가 좀 느려요. 이해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저를 바보 취급하기도 했고요.
저는 그때마다 속으로 울었어요.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나도 사람인데.' 하지만 말로는 표현 못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살았어요. 첫딸이 네 살, 둘째 딸이 두 살이 됐을 때까지.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우리 분가하자."
분가요? 갑자기 웬 분가 얘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분가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으면서요.
"왜 갑자기 분가를 하자고 하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그냥이라고만 하더라고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시어머니도 의외로 분가를 허락하셨어요. 평소 같으면 "우리 아들을 어디 보내느냐"고 하실 텐데, 그때는 "그래, 너희끼리 살아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정말 기뻤어요. '드디어 이 집에서 나갈 수 있구나. 우리 가족끼리 평범하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거든요.
분가는 정말 빠르게 진행됐어요. 일주일 만에 집도 구하고 이사도 다 끝났어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사 가던 날, 처음으로 남편이 저한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았어요. 짐도 같이 나르고, "새 출발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제 정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구나.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새 집은 방 두 개에 부엌, 화장실이 있는 작은 집이었어요. 그래도 시댁에서 구박받으며 살 때보다는 천국 같았거든요.
첫날밤,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같은 방에서 잤어요. 아이들은 옆방에 재우고. 그때 처음으로 '이제 진짜 부부가 되는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그 행복은 정말 짧았어요.
분가한 지 딱 일주일 만에 남편이 사라졌어요.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평범했어요. 남편이 나가면서 "저녁에 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밤이 되어도, 다음 날이 되어도.
처음에는 사고라도 났나 싶어서 걱정했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니까 이상했거든요.
그때 큰 시누이가 왔어요.
"엄마가 부르신다. 애들 데리고 집에 와."
뭔 소리인지 몰랐어요. 갑자기 왜 시댁으로 오라고 하는지.
"형님, 남편이 어디 갔는지 아세요?"
물어봤더니 그냥 "몰라. 어서 와"라고만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데리고 시댁에 갔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집 나갔다. 너 때문이다."
저 때문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들 못 낳는 주제에 분가까지 하겠다고 해서 우리 아들 마음이 상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더라고요. 분가는 남편이 먼저 제안한 건데 저 때문이라니.
"어머니, 분가는 남편이 하자고 했어요."
이렇게 말했더니,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다. 니가 조른 거지."
완전히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더라고요.
그때부터 시댁에서 또 살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셔서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시어머니가 이상한 말을 하셨어요.
"우리 아들은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너는 그냥 기다리기만 해라."
중요한 일이요? 무슨 일인지 아무리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어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같았어요. 가끔 "아직 소식 없냐?" 이런 식으로 서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요.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남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5년이 지났어요. 5년 동안 남편 소식은 전혀 없었고, 저는 아이들 둘을 혼자 키웠어요. 시댁에서 같이 살긴 했지만,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이 도움을 준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더 구박했죠.
"남편도 잡아두지 못하는 주제에 뭘 바라냐."
"딸만 낳더니 이제 남편까지 잃어버렸네."
이런 말들을 매일 들어야 했어요.
그런데 5년 만에 남편이 돌아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에 들어오더라고요.
"나 왔다."
그게 5년 만에 한 첫마디였어요. 사과도 없고, 설명도 없고. 그냥 "나 왔다."
저는 너무 화가 났어요. 5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나 하는 건지. 아이들이 아빠를 찾을 때 뭐라고 답해줘야 했는지. 그런 생각들이 마구 올라왔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요?"
물어봤더니 그냥 "일이 있었다"고만 하더라고요. 무슨 일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남편이 점퍼를 벗어서 걸어놓았는데,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가 떨어진 거예요. 주워서 보니까 여자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어요.
"5년 동안 행복했어요. 잘 살아요."
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됐어요. 5년 동안 행복했다고? 그럼 남편이 5년 동안 다른 여자와 살았다는 얘기인가?
"이게 뭐예요?"
쪽지를 들고 따져 물었더니, 남편이 처음에는 "모른다"고 잡아떼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계속 추궁하니까 결국 털어놨어요.
"어머니가 시켜서 그랬어."
어머니가 시켜서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소리예요? 어머니가 뭘 시키셨다고요?"
그랬더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찾아주셨어. 그래서 그 여자와 살다 왔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찾아줬다고요? 시어머니가 직접 다른 여자를 소개해줘서 남편을 보냈다는 얘기였어요.
"그 여자가 누군데요?"
"과부였어. 아들 쌍둥이를 낳은 적이 있어서 어머니가 그 여자면 우리한테도 아들을 낳아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
정말 말이 안 됐어요. 시어머니가 직접 다른 여자를 찾아서 남편을 보냈다니. 그것도 아들을 낳게 하려고.
"그럼 저는 뭐예요? 저는 부인이 아니에요?"
"너는... 어머니가 정식 부인이라고 했다. 그냥 임시로 다른 여자와 산 거라고."
임시로요? 5년을 임시로 살았다는 거예요?
더 충격적인 건 그 뒤에 들은 이야기였어요. 시어머니가 그 과부한테 직접 가서 금반지까지 주면서 "꼭 아들만 낳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 낳았어요?"
"못 낳았어. 5년 동안 살았는데 아이가 안 생겼어."
그래서 돌아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을 못 낳으니까 이제 쓸모가 없어진 거죠.
"그럼 이제 와서 뭘 하려고요?"
"어머니가 다시 너와 살라고 하셨어."
시어머니 말이면 다 하는구나 싶었어요. 저와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가 시켜서, 다른 여자와 살 때도 시어머니가 시켜서, 이제 돌아오는 것도 시어머니가 시켜서.
"그럼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헤어졌지."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더라고요. 5년을 같이 살았던 여자를 그냥 버리고 온 거예요.
저는 그때 느꼈어요. 이 사람한테는 사람이 물건과 다름없구나. 저도, 그 과부도, 그냥 아들 낳는 도구일뿐이구나.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저도 사람이에요! 5년 동안 혼자 애들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그랬더니 남편이 놀란 표정을 짓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화낸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는 바로 시어머니한테 가서 이르는 거예요.
"어머니, 저 사람이 화를 내요."
정말 한심했어요. 서른이 넘은 남자가 부인한테 혼난다고 엄마한테 이르다니.
시어머니가 저한테 와서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아들한테 큰소리치지 마라. 남편이 돌아왔으니 고맙게 생각해라."
고맙게 생각하라고요? 5년 동안 다른 여자와 살다가 이제 와서 고맙게 생각하라니.
"어머니,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이 다른 여자와 5년을 살다 온 게?"
그랬더니,
"아들 낳으려고 한 일인데 뭐가 잘못됐냐. 니가 아들을 낳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다."
결국 제 탓이라는 거였어요. 아들을 못 낳은 제가 나쁘다는 거죠.
그날 밤,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알고 보니 큰 시누이 집으로 가서 숨어 있었어요.
제가 찾아가서 만나자고 해도 시누이가 "지금 못 만난다"고 막았어요.
"형님, 우리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뭔 이야기? 우리 동생이 무서워한다."
무서워한다고요? 자기 부인을 무서워한다니 말이 됩니까?
그렇게 남편은 시누이들 집을 돌아다니면서 숨어 지냈어요. 첫째 시누이 집에서 한 달, 둘째 시누이 집에서 한 달, 이런 식으로.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이 사람들에게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냥 아들 낳는 기계였는데, 고장 난 기계라고 생각하는구나.
1년쯤 지나서 막내 시누이가 전화를 했어요.
"이제 그만 용서할테니 우리 동생 데려가. 계속 이럴 순 없잖아."
용서하라고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형님,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용서할 게 없고요."
"그래도 부부잖아. 애들 아버지기도 하고."
부부라고요? 지금까지 부부 같았던 적이 언제 있었나요? 애들 아버지라고 하지만, 아이들 돌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아버지예요?
"형님, 저는 이혼할 거예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이혼.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단어였어요.
이혼을 결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 시절 여자가 이혼한다는 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아이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영이와 미숙이도 이제 어느 정도 컸어요. 미영이가 아홉 살, 미숙이가 일곱 살. 아이들이 가끔 물어보곤 했어요.
"엄마, 아빠는 왜 집에 안 와요?"
"아빠가 우리를 싫어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빠는... 바쁘셔서 못 들어오시는 거야."
이런 식으로 둘러댔지만, 아이들도 바보가 아니었어요. 다른 집 아빠들은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우리 아빠만 안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특히 미영이는 영리한 아이라서 더 많은 걸 눈치채고 있었어요.
"엄마, 우리 아빠 다른 집에 사는 거죠?"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무 정확한 지적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해?"
"할머니가 큰이모한테 '아직도 눈치 못 챘나'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이들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니. 정말 뻔뻔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날 밤,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했어요.
"미영아, 미숙아. 엄마가 솔직하게 이야기할게."
"네, 엄마."
"아빠와 엄마는... 더 이상 같이 살기 어려울 것 같아. 앞으로 엄마가 너희를 혼자 키울 거야."
미영이가 조용히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이혼하는 거예요?"
이혼이라는 단어를 아이가 먼저 말하니까 더 마음이 아팠어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
"그럼 우리는 엄마랑 살 거예요?"
"당연하지. 엄마가 끝까지 너희를 지켜줄게."
미숙이는 아직 어려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엄마 슬퍼요?"
미숙이가 제 손을 잡으면서 물어보더라고요.
"엄마는 괜찮아. 우리 셋이 함께 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어요. 막막했거든요.
이혼을 하려면 남편의 동의가 필요한데, 연락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설령 이혼을 한다고 해도 당장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때만 해도 여자 혼자 살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아이 둘을 데리고 취업하기도 쉽지 않았고.
하지만 결심은 섰어요. 어떻게든 이혼하고 독립해서 살겠다고.
그런데 이혼 절차를 알아보니까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남편이 협의이혼에 응해주면 간단하지만, 응해주지 않으면 재판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변호사도 만나봤어요. 법률상담소에서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변호사가 그러더라고요.
"남편이 5년간 다른 여자와 동거했다면 충분한 이혼사유가 됩니다. 승소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됐어요.
"그런데 남편이 응하지 않으면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용도..."
비용 이야기를 들으니까 현실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당장 변호사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그래도 일단 남편한테 연락을 해봤어요. 막내 시누이를 통해서요.
"남편한테 전해주세요. 이혼서류에 도장 찍으라고."
며칠 후에 남편이 연락을 왔어요.
"만나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전혀 반갑지 않더라고요.
동네 다방에서 만났어요. 서로 마주 앉았는데 정말 어색했어요. 부부라고 하기엔 너무 남남 같았거든요.
"이혼하자고?"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어요.
"네.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
"왜?"
정말 황당한 질문이었어요. 왜냐고 묻다니.
"왜요? 지금까지 우리가 부부 같았나요? 5년 동안 다른 여자와 살면서 이제 와서 왜냐고 물어보세요?"
"그건... 어머니가 시킨 일이었다고 했잖아."
또 시어머니 핑계더라고요.
"그럼 이제 어머니가 이혼하라고 하시면 이혼할 거예요?"
"..."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도장만 찍어주세요. 서로 힘들게 할 필요 없잖아요."
그랬더니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더라고요.
"생각해보고 연락할게."
그리고는 그냥 가버렸어요.
몇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어요. 다시 연락해봤더니 이번에는 아예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시누이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했어요. 뻔히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거죠.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어요. 저는 이혼서류를 준비해서 법원에 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나타났어요.
"이혼서류에 도장 찍어줄게."
정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정말요?"
"응.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뭔 조건인지 물어봤더니,
"아이들 양육권은 포기해."
양육권을 포기하라고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아이들은 제가 키울 거예요."
"안 돼.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키워야 해."
우리 집이라고 하니까 시댁을 말하는 거였어요. 아이들을 시댁에서 키우겠다는 거죠.
"왜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었으면서요."
"어머니가 그러셨어. 아이들은 우리 핏줄이니까 우리가 키워야 한다고."
또 시어머니였어요. 모든 게 시어머니 뜻이었어요.
"절대 안 돼요. 아이들은 제가 키울 거예요."
"그럼 이혼 안 해."
결국 협박이었어요. 아이들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혼해주지 않겠다는 거죠.
그날은 결론을 못 내고 헤어졌어요.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니까 더 확신이 섰어요. 절대 아이들을 시댁에 보낼 수는 없다고.
미영이와 미숙이가 시댁에서 얼마나 구박받았는지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곳에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었어요.
결국 이혼은 물거품이 됐어요.
그 후로도 몇 번 더 만났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남편은 끝까지 아이들 양육권을 요구했고, 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죠.
"재판을 하자."
결국 그렇게 말했어요.
"재판하면 내가 이길 거야. 여자 혼자 어떻게 아이 둘을 키울 수 있겠어?"
남편도 맞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재판이든 뭐든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재판 준비를 하려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어요. 변호사비는 물론이고, 증거자료도 준비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이에 생활도 해야 하는데, 당장 수입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때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을 때, 어머니가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딸아, 고생 많았다."
그 한마디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어요.
"어머니, 저 어떻게 살아야 해요?"
"너는 잘 할 거다. 우리 딸 강한 아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며칠 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장례식에 남편도 왔어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도 다 왔고요. 그런데 장례식장에서도 서로 말을 안 했어요. 그냥 남남처럼.
어머니를 보내고 나니까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지할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래도 아이들은 있었어요. 미영이와 미숙이가 제 전부였죠.
"엄마, 우리가 엄마 지켜줄게요."
미영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그때 결심했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살겠다고. 이혼이 안 되면 그냥 별거라도 하면서 살겠다고.
시댁에서는 계속 압박했어요.
"언제까지 이럴 거냐. 그냥 집으로 와서 살아라."
하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10년이 흘렀어요.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부였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남남으로 살았어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작은 방 하나를 얻어서 살았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가끔 이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잠수를 타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해서 제대로 진행이 안 됐어요.
"법원에서 만나자."
약속을 잡아도 당일에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시간만 흘러갔어요.
아이들은 잘 자라줬어요. 미영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컸고, 미숙이도 밝고 예쁘게 자랐어요. 아버지 없이 자랐지만 큰 문제없이 잘 커줬죠.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어요. 남의 집 청소도 하고, 음식점에서 일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참았어요.
그런데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미영이가 결혼을 하게 된 거예요.
미영이가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였어요. 직장에서 만난 좋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저 결혼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우리 딸이 드디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예비사위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공무원이었고, 성격도 온화하고, 무엇보다 미영이를 정말 아껴주는 게 보였거든요.
"어머님, 미영이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인사드릴 때부터 예의 바르게 해주셔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혼인신고를 할 때 아버지 인감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미영이가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아빠 인감을 받아야 해요."
20년 넘게 연락도 안 하고 지냈는데 갑자기 인감을 받으러 가야 한다니.
"혼인신고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할수 있는거 아니야?"
"그게 아니래요. 아버지 도장이 꼭 필요하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남편한테 연락을 했어요. 정말 오랜만이었죠.
"미영이 결혼해요. 혼인신고에 아버지 인감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도장 좀 찍어주세요."
"미영이가 결혼을 한다고?"
뭔가 놀라는 것 같더라고요.
"네. 좋은 사람 만났어요."
"언제 결혼식 하는데?"
날짜를 알려줬더니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후에 만나서 도장을 받았어요. 그때 남편을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많이 늙어 있었어요. 머리도 많이 세고, 얼굴에 주름도 많고.
"미영이 잘 키웠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잘 키웠다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도움 준 적 없으면서요."
좀 서운한 마음에 그렇게 말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도장만 받고 헤어졌는데, 그때 남편이 물어보더라고요.
"결혼식에 가도 되나?"
갑자기 결혼식에 오겠다고요? 저는 너무 황당했지만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미영이한테 물어보세요."
미영이한테 말했더니 미영이도 고민하더라고요.
"엄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빠가 오겠다고 하는데."
"마음대로 해. 너의 결혼식이니까."
결국 미영이가 "와도 된다"고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이니까 결혼식에는 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결혼식 당일이 됐어요.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거죠.
남편도 왔고, 시어머니도 왔어요. 아흔이 넘으셨는데도 결혼식에 오셨더라고요. 시누이들도 다 왔고.
그런데 분위기가 정말 어색했어요.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남남 같았거든요.
특히 남편과 저는 서로 말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미영이는 그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최대한 밝게 행동하려고 했어요.
"할머니, 와주셔서 고마워요."
시어머니한테 인사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미영이를 보더니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손녀 예쁘게 컸네. 시집 잘 가거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 평화로웠어요. 하지만 식장 한쪽 구석에서 남편과 저는 완전히 어색한 공기를 풍기고 있었죠.
하객들이 "신부 아버님, 신부 어머님" 하면서 인사를 해주는데, 저희는 마치 이혼한 부부처럼 따로따로 서 있었어요.
"당신 왔어요?"
제가 조심스럽게 남편한테 말을 걸어봤어요. 그런데 들은 척도 안 하더라고요. 그냥 딴 데를 보고 있었어요.
정말 당황스럽고 창피했어요. 하객들이 다 보고 있는데 남편이 부인 말을 무시하다니.
미숙이가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왜 엄마 말을 안 들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빠가... 긴장하시나 봐."
그렇게 둘러댔지만, 미숙이도 눈치채고 있었어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그런 어색한 분위기였어요. 가족 사진을 찍을 때도 남편과 저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섰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미영이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생각하니까 미안하더라고요. 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데, 부모가 그런 모습을 보여서.
식이 끝나고 나서 남편이 저한테 다가왔어요. 오랜만에 먼저 말을 거는 거였죠.
"이야기 좀 하자."
뭔 이야기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따라갔어요.
식장 밖 조용한 곳에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미영이도 시집갔으니까 이혼하자."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왜 안 하다가 갑자기요?"
"아이들 때문에 미뤘는데, 이제 미영이도 결혼했으니까."
아이들 때문이라고요? 그동안 아이들한테 관심도 없었으면서 무슨 아이들 때문이라는 건가 싶었죠.
"미숙이는 아직 결혼 안 했는데요."
"미숙이도 곧 할 거 아니야."
정말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좋아요. 이혼하죠."
저도 더 이상 이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럼 언제 법원에 갈까?"
"다음 주에 시간 맞춰서 연락해요."
그렇게 약속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연락했더니 또 안 받더라고요. 설마 또 잠수 타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몇 주가 지나고 겨우 연락이 닿았을 때,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또 생각해봐야 한다고요? 벌써 몇 번째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을 더 해요? 지금까지 20년 넘게 떨어져 살면서 뭘 더 생각한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니까."
또 시어머니 핑계였어요. 아흔이 넘으신 시어머니가 이혼을 반대한다는 거였죠.
"어머니가 뭐라고 하세요?"
"며느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하셔."
책임이요? 저한테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책임을 져요?"
"아들을 못 낳았잖아."
지금까지도 그 생각인 거예요. 아들을 못 낳은 게 제 잘못이라고.
"그게 제 잘못이에요? 그리고 딸도 자녀인데 왜 아들만 고집해요?"
"우리 집 혈통이..."
그 순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어요.
"혈통이요? 무슨 왕가도 아니고 혈통이 뭐가 그리 중요해요?"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시어머니 편이었어요.
결국 그날도 이혼은 무산됐어요.
그 후로 2년이 더 지났어요. 미숙이도 결혼을 했어요. 역시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결혼했죠.
미숙이 결혼식 때도 남편이 왔어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어색한 분위기였고, 서로 말도 거의 안 했어요.
미숙이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또 이혼 얘기가 나왔어요.
"이제 정말 아이들 다 결혼했으니까 이혼하자."
이번에는 정말 하겠다 싶었어요. 더 이상 핑계할 것도 없으니까요.
"법원에 가서 절차 밟자."
"그래요."
그런데 또 약속 날짜가 되니까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몇 번째 같은 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연락을 했어요.
"이혼서류 준비해뒀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상했어요.
"왜요?"
"그냥.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뭔가 이상했지만, 이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언제 할까요?"
"다음 달에."
이번에는 정말 하는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약속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시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얘기였어요.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정말 위독한 상태였어요. 아흔세 살이시니까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죠.
혹시 남편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혼하려는 건가 싶었어요. 시어머니 몰래.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어요. 약속 당일에 또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정말 지쳤어요. 이런 식으로 몇 년을 더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혼자서도 이혼소송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20년 이상 별거하셨고, 상대방이 이혼절차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혼 사유가 됩니다."
변호사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희망이 생겼어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네. 요즘은 양식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딸들이 증인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 더 쉬울 거예요."
그렇게 해서 혼자 이혼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무서웠어요. 법원에 가본 적도 없고, 소송이라는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영이와 미숙이에게도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아빠와 이혼소송 할 거야."
"엄마, 필요하면 우리가 도와줄게요."
딸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마음이 든든했어요.
드디어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어요.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이었어요.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나서 처음으로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냥 상황에 떠밀려만 살았는데, 이제는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며칠 후에 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남편에게도 소송 서류가 전달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왜 소송을 걸었어?"
목소리가 당황한 것 같았어요.
"20년 넘게 기다렸는데 안 해주니까 어쩔 수 없이 했죠."
"법원까지 가면서 이혼하고 싶어?"
"당연하죠. 더 이상 이런 애매한 관계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랬더니 한참 있다가,
"알겠다. 합의하자."
드디어 합의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응. 서류 준비해서 법원에 가자."
이번에는 정말 되는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워낙 많이 속아서 반신반의했어요.
"언제 갈까요?"
"다음 주 화요일."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정하니까 이번에는 정말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며칠 후에 막내 시누이가 전화를 한 거예요. 몇 년 만에 처음 받는 전화였죠.
"올케, 우리 어머니가 많이 아파."
시어머니가 아프시다고요?
"어떻게 아프신데요?"
"못 일어나세요. 의식도 가끔 잃으시고."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그동안 원수처럼 지냈지만, 그래도 시어머니였거든요.
"병원에 모셨어요?"
"모셨는데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오래 못 버티실 것 같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뭔가 찜찜했어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혼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남편이 또 이혼을 미룰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약속된 날짜에 법원에 갔어요.
남편이 정말 왔더라고요. 이번에는 안 왔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나타났어요.
법원 앞에서 만났을 때 남편의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어요.
"어머니 상태가 어때요?"
"많이 안 좋아."
그런 대화를 나누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혼조정실에서 조정위원이 저희를 불렀어요.
"부부가 20년 이상 별거 상태였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혼에 합의하십니까?"
남편이 잠시 망설이더니,
"네."
드디어 이혼에 합의한 거예요.
그 다음은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문제였는데, 나눌 재산도 없었고 위자료를 받을 상황도 아니었어요. 남편도 별로 가진 게 없었거든요.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고 결혼도 했으니 특별한 문제없이 이혼이 가능한 상황이었죠
정말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또 조건이요?
"뭔 조건인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그 다음에 이혼하자."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거였어요.
"왜요?"
"어머니가 이혼 소식 들으면 충격 받으실까 봐서요."
그런 이유였어요.
조정위원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참 생각해봤어요. 지금까지 50년을 기다렸는데 몇 달 더 기다리는 게 뭐 대수인가 싶기도 했거든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요?"
"의사 말로는 길어야 몇 개월이라고 해."
"그럼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바로 이혼하기로 약속해요?"
"그래."
그렇게 해서 이혼은 또 미뤄졌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약속이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바로 이혼한다는.
두 달 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흔세 살의 나이였죠.
시어머니 장례식에도 갔어요. 그동안 원수 같았지만,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빈소에 앉아 있는 시어머니를 보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무서웠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냥 한 분의 노인이셨구나 싶었어요.
5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니까 감회가 새로웠어요. 그때 시어머니도 젊었고, 저도 스무 살 어린 신부였고.
물론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만, 그분도 그분 나름의 삶이 있었을 거예요. 여섯 딸 낳고 겨우 아들 하나 얻었을 때의 기쁨, 그 아들을 지키려고 했던 마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인생이었겠죠.
장례를 치르고 나서 일주일 후에 남편이 연락을 했어요.
"약속대로 이혼하자."
이번에는 정말 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법원에서 이혼 절차를 마쳤을 때, 정말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이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조정위원이 그렇게 말씀해주실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법원을 나오면서 남편과 마지막 대화를 했어요.
"이제 정말 끝이네요."
"그렇게 됐네."
"서로 건강하게 삽시다."
"응."
그렇게 헤어졌어요. 50년 만에 정말 끝이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이혼 확인서를 보니까 실감이 났어요. 이제 정말 혼자구나. 법적으로도, 실제로도.
무서우면서도 후련했어요.
딸들한테 연락했어요.
"엄마, 드디어 이혼했어. 이제 정말 자유야."
"엄마, 수고 많았어."
미영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몇 달 후에 남편 소식을 들었어요. 여전히 시댁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이제 정말 혼자가 된 거죠.
가끔 남편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그 사람도 참 불쌍한 인생을 산 것 같아서요. 평생 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의사로 결정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지금은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어요. 넓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제 공간이에요. 아무도 저를 구박하지 않고, 아무도 제게 명령하지 않아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딸들이 가끔 도움을 주고, 정부 지원도 받고 있어서 그럭저럭 살 만해요.
요즘은 복지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같은 또래 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처음으로 제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쓰고 있어요.
가끔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아쉬운 게 많아요. 만약 좀 더 일찍 용기를 냈다면, 만약 좀 더 당당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남은 인생은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려고요.
얼마 전에 미영이가 손자를 낳았어요. 정말 예쁜 아기였어요. 그 아기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아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겠구나.'
저는 그런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했지만, 손자는 다를 거예요. 제가 못 받은 사랑을 손자에게는 충분히 주고 싶어요.
미숙이도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에요. 그럼 손주가 둘이 되는 거죠. 생각만 해도 기뻐요.
이제 저는 할머니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는 거예요. 며느리로서의 인생, 부인으로서의 인생은 끝났지만, 할머니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거죠.
지난번에 손자를 돌봐주면서 느꼈는데,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기쁠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내 딸들을 키울 때는 워낙 힘든 상황이어서 제대로 즐길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요즘 같이 복지관 다니는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저 같은 사연을 가진 분들이 꽤 많아요. 다들 자기 나름의 고생을 하면서 살아오신 거죠.
그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건,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거예요.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지, 과거에 어떤 고생을 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이제는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한을 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려고 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손주들도 많이 봐주고, 딸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살아보고 싶거든요.
가끔 딸들이 저한테 그래요.
"엄마, 그때 왜 그렇게 참고 사셨어요? 진작 이혼하지 그랬어요."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 어려워요. 그때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해줘도 딸들은 잘 이해를 못 하거든요. 그만큼 세상이 바뀐 거죠.
하지만 저는 딸들한테 이렇게 말해줘요.
"그래도 엄마는 후회하지 않아. 그 힘든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희들을 더 잘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고생한 만큼 딸들한테는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거든요.
미영이와 미숙이가 어렸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어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시간도 많지 않았고. 하지만 사랑만큼은 충분히 주려고 했어요.
"엄마는 너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그런 말을 자주 해줬어요. 시댁에서는 딸이라고 무시당했지만, 적어도 엄마한테만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봐요. 딸들이 모두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서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니까요.
저도 50년을 참고 살았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늦게 찾은 행복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해요.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세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내세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순간이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