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털게 Sep 29. 2024

"나보다 잘난 친구들한테 따돌림당할까 겁나요"

건우님께 (가명. 현재 고등학생), 


모두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답을 드린다고 했는데,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연 정리해봤습니다. 


나름 활달한 성격으로 살다가, 남중에서 서열정리를 당함. “잘난애들”을 나와 다른 급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싸로 삼. 쭈구리로 살다가 고등학교에 갔는데 키도 커지고, 축구도 잘하게 되면서 다시 외향적으로 바뀌고 친구도 많아짐. 성적도 오름. 심지어 잘생겨서 질투난다는 말도 몇번 들음 (어우 기분 좋으셨겠네요 ㅋㅋㅋ) 축구대표도 나가고 나름 잘 하고 있는데, 그런데 과거 기억 때문인지,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내가 뒤쳐지는 부분부터 찾게 됨.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거나, 운동을 잘 하건, 잘생겼거나, 키가 크거나 등의 기준으로 스스로 수저게임을 만듦. 내가 부족한 부분에서 “우위를 점한” 친구에게 무시를 당할 것 같음. 진심으로 대하기가 힘듦. 


 제가 몇마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미래가 밝으시고, 무시당해본 경험도 있어서 약자의 입장도 헤아릴 수 있는 조건까지 갖고 계세요. 지금은 무시받고 못나가봤던 기억이 아픈 기억일지 모르지만, 본인이 그 입장에 있어봤기 때문에 약자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계신 것이고, 이건 건우님이 살면서 엄청난 장점이 됩니다.  


2. 

근데, 이 경험을 나에게 유리하게 쓸 수도 있고, 불리하게 쓸 수도 있습니다. 유리하게 쓰는 경우는, 본인이 쭈구리였고 무시받아봤던 경험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슴 쫙 펴고 ‘어, 나 그런적 있어!’라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면, 남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 이 경험을 숨기려하고, ‘그건 내가 아니었다’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끊임없이 쪼그라들게 됩니다. 이러면 남의 약점에 공감해주기 보다는 모른척 하게 됩니다. 나의 못난 과거가 드러날까봐. 그렇게 되면, 그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가슴펴고 살아갑니다. 아픈 경험이 자산이 되는 것이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숨기고 살아갑니다. 아픈 경험을 트라우마로 만든 후 괴로워하며 살아갑니다. 


3. 

지금 하고 계신 게임은 이런 거에요. 건우님이 자기 목에 줄을 칭칭 감은 다음에 손잡이를 친구들에게 주어서 끌려다니는 것이요. 나의 기분, 나의 자존감, 나의 가치, 나의 모든 것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꼴입니다.


 이렇게 되면 건우님은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됩니다. 저의 비웃음 한번 으로 건우님의 하루는 망가질 것이기 때문에. 건우님은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볍게 칭찬 한번만 해줘도 기분이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의 목줄을 남의 손에 쥐여준 사람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내 자존감의 목줄, 내 가치의 목줄을 내가 쥐고 있지 않습니다. 타인이 쥐고 있어요.  


그 목줄을 쥔 사람이 지금은 반 친구들이겠지만, 어떨 때에는 부모님이 될 것이고, 직장동료가 될 것이고, 같은 동 이웃이 될 것이고, 나중엔 노인정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 목줄은 그 사람이 가져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준 것입니다. 


4.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온전히 상대방의 몫입니다. 나는 내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내 느낌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이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온전히 그의 몫입니다. 마음껏 평가하게 놔두세요. 그 평가를 옆 친구들이랑 공유를 한다면, 마음껏 공유하도록 놔두세요. 그건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소관입니다. 내 소관이 아닙니다. 그걸 쫓아가서 좋게 평가하게 바꾸려고 하면 내 목줄을 상대의 손에 쥐어주는 꼴이 됩니다. 


테니스 칠 때, 아무리 승부욕이 강한 사람도 본인 쪽 코트에만 머무릅니다. 내가 보낸 공을 어떻게 칠 지는 상대방의 자유입니다. 근데 지금 건우님은 상대방 코트로 넘어가서, '이 공을 왜 이렇게 치냐! 저렇게 쳐야지' 하고 있어요. 그러지 마세요. 자기 코트로 돌아오세요. 그건 그의 몫이니 어떻게 평가하던, 공유하던 놔두세요. 그의 자유이고, 그의 자유가 아니라도 막을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막으려 하면 내가 그의 노예가 됩니다. 공을 상대방 코트로 보내고, 어깨 펴고 지내세요. 


그 평가가 집에 와 생각했을 때 맞는 말 같으면, 고마워하세요. 내가 부족한 점이 뭔지 알려준겁니다. 나이 먹으면 자기 손해볼까봐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은 나쁜 의도였는데요?” 그래도 고마워하세요. 못생긴 접시에 담겼다고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음식은 드시고 접시만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음식 준 것에 감사하세요. 최소 나에 대해 관찰하는 마음은 있었기 때문에 음식이 나온 겁니다. 


5.  

친구가 나에 대해 좋게 평가를 안하면 어떻게 할까요? 자기 그릇에 맞게 하세요. 


그릇이 엑스라지면,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더욱 친절하게 대하세요. 음식을 또 받아먹을 수도 있겠다 하고 더욱 가까이 두세요. 알고보니 이 사람 마음에 꼬인게 있어서 그랬던거라면, 그 꼬임을 친절함으로 펴주고 보듬어주세요. 


그릇이 미디엄이라 나쁜 마음은 안 먹지만 마음은 터놓고 싶지 않아졌다?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모두와 깊은 친구가 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내치거나 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계속 친절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고 그 자리에 놔두면 됩니다. 


그릇이 간장종지라 그와 있으면 기분이 나빠서 도저히 안되겠다면? 간단합니다. 그 친구랑 멀리 지내면 됩니다. 단, 그가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가 아니라, '내가 불편함을 못 이겨냈기 때문에' 멀리 두는 겁니다. 상대에 대한 원망 없이 멀리 하면 됩니다. 멀리한다고 꼭 미워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절교선언 같은 것을 하지 마세요. '내가 불편함을 못 이겨냈다'는 부끄러움으로 멀어지세요. 미안함으로 멀어지세요. 원망의 마음이 든다면, ‘내가 아직도 목줄을 넘겨놨구나’하고 느끼세요. 


계속 원망이 들고 화가 난다면, 그릇에 금이 간 겁니다. 못난 것이 아니라, 마음고생이 많은 것이고, 히스토리가 있는 겁니다. 이건 치유가 필요한 상태구요,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 합니다. 이 상태로는 이세상 그 누구를 만나도 시간이 지나면 원망하게 됩니다. 결국 ‘나는 괜찮은데, 세상은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차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그릇을 금을 메꿀 수 있습니다. 넓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 80이 넘어서도 그릇이 말랑말랑합니다. 


6.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의 끝은 허무이거나 불안입니다. 건우님이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인정을 위한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남의 평가는 무시하지도 말고, 거기에 목매달지도 마세요. 접시는 버리고 음식만 드세요. 나중엔, 예쁜 접시까지도 버리고 음식만 드세요.  


7. 

나쁜 평가를 넘어서는 일들, 폭력이 사용되는 등의 불법적인 행동이 일어나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선생님께 알려야 합니다. 근데 거기까지 가지 않는 한, 그건 그들의 자유고 막을 방법도 어차피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말고 스스로 어깨펴고 사는것이 당당한 삶입니다. 


8. 

건우님보다 나아보이는 친구를 대할 때, 열등감으로 인해 마음을 열기 힘든 문제는 위에서 제가 말한것처럼 해결합니다.  


‘난 나를 꾸밀 마음이 없다. 이런 척 저런 척을 할 마음이 없다. 난 그냥 이런 사람이다’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그리고 ‘이런 나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상대의 몫이다.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관여할 방법도 어차피 없다. 서로 안 맞으면 안보면 되는 거지, 거기서 잘 보이려고 난리 칠 필요 없다. 어차피 세상에 사람은 많다’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대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