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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마지막 인사

차갑지만 따스한 이별의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by 도토리샘

마지막 겨울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투명한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서로 만나 흘러내리는 모습이 어쩐지 오늘따라 애틋하게 느껴진다. 계절의 경계에 서서, 끝과 시작 사이의 미묘한 순간을 바라본다. 이 빗소리는 겨울의 마지막 인사인 걸까, 아니면 봄의 첫 인사일까.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올라가고 봄이 시작될 거라고 일기예보는 말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항상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아쉬움과 기대, 그리고 그 사이를 떠도는 미묘한 공허함까지.


겨울비는 여름의 소나기와는 다르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다 금세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듯 천천히, 끈질기게 내린다. 그 소리는 마치 겨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별의 노래 같다.


"기억하니? 첫눈이 내리던 날을, 너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던 그 순간을,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차가워 주머니에 넣었던 그때를..."


어쩌면 우리는 비 오는 날의 소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감정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락함, 평화로움, 그리고 때로는 달콤한 멜랑콜리까지. 빗소리는 우리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자연의 배경음악이다.


비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작은 지붕 아래 서 있었다. 주머니 속의 손은 차가웠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왔다. 그때 내리던 비도 겨울의 마지막 비였을까.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함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흘렀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바쁘게 지나갔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는 동안, 나는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겨울이 끝나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가는 경주를 구경하곤 했다. 어떤 빗방울이 먼저 바닥에 도달할지, 어떤 빗방울이 중간에 다른 빗방울과 만나 더 커질지를 예측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놀이가 실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는 것을.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누군가와 만나 더 큰 흐름을 만들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중간에 멈춰 서기도 하면서. 그리고 마침내 모든 빗방울이 땅에 닿아 더 큰 물줄기를 이루듯, 우리의 삶도 어딘가로 흘러가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의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깊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젖은 아스팔트 위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까지. 이 소리들은 마치 자연이 만든 백색소음처럼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것은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밤에 내리는 겨울비의 소리는 더욱 특별하다. 방 안의 불을 끄고, 이불 속에 누워 지붕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은 어떤 명상보다도 효과적인 휴식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날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마지막 겨울비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성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의 '마지막'을 경험할 때, 그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대학 시절의 마지막 수업,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고향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 이런 순간들이 우리 기억 속에 더 선명하게 남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붙잡아두려고 더 노력하고, 더 많은 감정을 투자한다.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순리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변화와 성장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내리는 마지막 겨울비는 그 경계에 서 있다. 아직은 춥지만, 그 속에 봄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그 미묘한 순간.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변화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때로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마지막 겨울비가 내리는 동안, 땅속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생명의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우리의 성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고 있는.


창가에 앉아 마지막 겨울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 시간.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를. 일상의 바쁨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순간들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삶이 된다. 마지막 겨울비가 내리는 동안,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을 상상해본다.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나 예측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을 더 깊이 경험하는 방법이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알게 된다. 모든 '마지막'은 새로운 '처음'의 시작임을. 마지막 겨울비가 내린 뒤에 찾아올 첫 봄날의 햇살처럼. 그것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순간들을 상징한다. 끝과 시작, 이별과 만남, 아쉬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경계의 시간.


창가에 앉아 마지막 겨울비를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복잡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마지막 겨울비가 내리는 오늘,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나요? 그 답이 바로 당신만의 '마지막 겨울비' 이야기일 것입니다.


빗방울이 창을 타고 흘러내리듯,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붙잡을 수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마지막 겨울비는 그렇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이라는 인사가 '다시 만나자'는 의미이듯,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임을.


빗소리가 잦아들고, 하늘이 밝아온다. 마지막 겨울비가 남긴 물방울들이 햇살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겨울이 우리에게 남긴 작은 선물 같다. 이제 창을 열고 봄의 첫 숨결을 맞이할 시간이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오지만, 마지막 겨울비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마치 우리의 기억 속에 특별했던 순간들이 영원히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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