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아이콘인 나에게
나는 한때 ‘걱정의 아이콘’이었다.
아니, 지금은 과거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굳이 끌어안고 살아왔던 사람. 쓸데없는 생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야 마음이 놓였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마 불편했을 거다. 직장에서는 바로 아래 직원이, 집에서는 아내가 그랬을 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떠올리며 대비해야 안심이 됐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가끔,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면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잖아” 하고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수많은 걱정 중 실제로 일어난 건 백 개 중에 한두 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아흔여덟 개는 에너지만 낭비하고 감정만 소모했을 뿐이다.
그 모든 걱정에 들였던 시간과 힘이 이제 와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다짐한다. 지나치게 앞서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얼마 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딸이 장난 중에 넘어졌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는데, 꽤 심하게 넘어진 모양이었다. 딸은 크게 울었다. 안아주며 다독이면서도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스쳤다. 진짜 아픈 걸까? 아니면 요즘처럼 관심을 끌고 싶은 걸까?
요즘 딸은 투정도 많고, 꾀병 부리는 일도 자주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의심부터 하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은 점점 더 커졌다. ‘진짜 다친 거면 어떡하지?’ 태권도 품새 심사 앞두고 있는데 다리를 다치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이미 지나간 상황과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가 머릿속에서 계속 부풀어 올랐다. 그때 아내가 단번에 정리했다. 근처 병원을 찾아보더니 지금은 진료 가능한 곳이 없으니 내일 상태를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내는 나보다 딸의 성향과 몸 상태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침착함은 딸의 감정까지 함께 다독이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깨달았다. 지금 해야 할 건 걱정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누나가 넘어지고 우는 모습을 본 둘째도 놀랐다. 둘째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함께 다독여주는 데 집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딸도 많이 진정됐다.
아이들은 부모의 표정과 반응을 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의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아이의 정서엔 더 깊은 안정감을 준다.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게 하나 있다. 곤경에 처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은 방향은 없을까?” 그걸 먼저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아무리 큰 아픔도 결국 지나가고, 그토록 힘들었던 순간도 돌아보면 작은 점 하나로 남을 때가 많다.
그 작은 점에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해결되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