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책 한 권이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 준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자기계발서다.
아니면 경제, 인문, 심리학 분야의 책들.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일부러 멀리한 건 아니었지만, 소설은 내가 몰입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그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내 마음 어딘가에 ‘소설은 진짜 독서가 아니다’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교과서 봐야 할 시간에 만화책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재미는 있는데,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죄책감 같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여긴 내 안의 선입견은 이제 알 것 같다.
그 생각을 바꿔준 첫 소설이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다.
웬만한 자기계발서보다 마음에 더 깊이 남았다.
지금도 몇몇 장면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책을 추천해 주고, 직접 선물까지 해준 글 벗이 있었다.
『모순』이 너무 좋아서, 그분께 다음 책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이 『훌훌』이다.
『훌훌』도 정말 놀라웠다.
『모순』만큼이나 강한 여운이 남았다.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책이지만, 40대인 내가 읽어도 충분히 좋았다.
인상 깊은 장면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내 식대로 해석도 곁들였는데, 아이들이 정말 몰입해서 들었다.
계속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데, 곤란할 정도였다.
이 책,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미 나온 건 아니겠지?)
소설은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마음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훌훌』엔 그런 인물이 나온다.
한 소녀가 있다.
겉으로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오래전부터 ‘진짜 나’와 ‘겉으로 보이는 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들킬까 봐, 혹은 스스로 외면하기 위해 마음을 눌러가며 버텨온 시간들.
그러다 어느 날, 일상이 무너진다.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인물과 함께 살게 되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 깊숙이 묻어둔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외면했던 과거, 애써 덮어둔 진실, 그리고 마음속에 숨겨둔 진짜 바람과 욕망까지.
그녀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변해간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며, 누군가와 함께 걷는 법을 배운다.
『훌훌』은 단순한 청소년 성장소설이 아니다.
세대와 나이를 가리지 않고, 관계의 단절과 감정의 회피, 회복의 가능성을 담담하게, 섬세하게 그려낸다.
독립이 성장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살짝 기대는 일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준다는 걸 잊고 살 때가 있다.
이 책은 그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다.
가끔은 책 한 권이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 준다.
『훌훌』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람,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작은 위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예전의 나처럼 ‘소설은 진짜 독서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이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설마,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콧물이 돌았다.
서러웠고 치사했고 가슴이 뭉클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지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닥쳐 버린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