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된 생쥐
인도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 우화가 있다.
고양이만 보면 벌벌 떨던 생쥐가 있었다.
그 생쥐를 불쌍히 여긴 천사는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천사는 개로 바꿔주었다.
하지만 개가 된 생쥐는 이번에는 호랑이를 두려워했다.
천사는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된 생쥐는 또다시 사냥꾼을 무서워했다.
결국 천사는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바꿔주어도, 마음속 두려움이 바뀌지 않으면 이 생쥐는 달라질 수 없구나.”
그리고 다시 생쥐로 되돌려 놓았다.
이 우화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남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주고, 아무리 간절히 도와주어도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결국 또 다른 핑계를 찾을 뿐이다.
‘할 수 없다’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 ‘하기 싫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지금 누군가를 바꾸려고 애쓰고 있는가?
더 나아지길 바라며 조언하고, 손을 내밀고, 시간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상대가 바뀔 의지가 없다면 그 모든 애씀은 결국 내 마음만 지치게 한다.
혹은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조언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오직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만 변할 수 있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바꿔줄 수도 없다.
진짜 변화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가 바꾸고,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때로는 절벽 끝에 몰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스스로 비상을 꿈꾸며 진짜 행동력을 발휘할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만 매우 게으르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고 편안한 것만 추구하려고만 한다.
자연스레 잘하는 일만 하려고 하고, 기존의 틀을 바꾸려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단점이 존재하지만,
스스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것을 제거하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버리고 싶은 내 모습을 찾아 제거하자
행동력 수업 ㅣ 오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