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러하다.
대신 빙빙 돌려 말한다. 상대가 내 속마음을 먼저 알아주길 바란다. 그게 마음을 전하는 더 부드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나는 답답해진다.
"네 마음을 정확히 이야기하란 말이야!"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문득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제는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축하 케이크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기뻐하셨고, 가족의 온기를 즐기셨다. 하지만 나는 편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나는 딸과 아들에게 “할아버지께 편지를 써보자”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내 안에 있던 감정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다.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말을, 아이들이 대신 전해주길 바랐다. 딸과 아들이 사랑스러운 손녀·손자로서자연스럽게 아버지께 다가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딸은 편지를 쓰길 망설였고, 아들은 낯선 분위기에 어색해했다. 순간, 내 안에서 불편함이 차올랐다.
“편지 안 쓰면 할아버지한테 용돈 못 받을걸?”
나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내 안의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고, 그 감정이 아이들을 향해 튀어나왔다. 이윽고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화는 아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왜 내 감정을 직접 전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대신해달라고 했을까. 그 감정은 생신장소로 가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막상 아버지를 만나서도, 나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내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시간이 지나자 딸과 아들은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께 다가갔다. 딸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건넸고, 아들은 장난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대화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더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사로잡혀 불편함과 자격지심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와 달리,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내내 불편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했던 걸까.
아이들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 묵직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향한 내 감정을 왜곡해왔다.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가 없었고, 대신 아이들을 통해 내 마음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전해야 하는 사람은 아이들이 아닌 나였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