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분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봅니다
저는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이미 퇴직한 분부터, 그 시점을 눈앞에 둔 분들까지.
그들과의 대화에서 반복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막막함을 말할 거라 생각하지만, 더 자주 듣는 질문은 다릅니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쓰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오랫동안 조직, 사회, 가정 안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이들.
그들은 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정해 왔습니다.
그러다 퇴직을 앞두면 처음으로 이런 질문과 마주합니다.
‘이제는 나로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있었나?’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역할로 존재하던 삶에서,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하는 시점에 선 것이지요.
이 고민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닌,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니까요.
하지만 삶의 중심을 ‘나’에게 두기 시작하면, 욕심이 앞서는 순간도 생깁니다.
‘잘하는 것’을 찾다가 ‘나만의 길’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중심은 ‘나’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은 결국 ‘남’을 향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은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타인의 행복을 함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결국, 나를 위하는 길은 남을 위한 길과 겹쳐져야 합니다.
퇴직 이후야말로, 그 가치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봅니다.
“내가 중심이지만, 그 중심은 타인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미 잘 가고 계신 겁니다.
질문이 있다는 건, 내 안에 이미 답이 있다는 뜻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