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글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인터뷰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특유의 온기가 있습니다. 그 온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면 유독 마음이 머무는 지점들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그가 품고 있는 '문장의 숲'입니다. 시인은 특별한 대본 없이도 수많은 문장을 막힘없이 꺼내어 놓습니다. 사회자의 즉흥적인 질문에도 자신의 견해를 앞세우기보다, 그 상황에 꼭 어울리는 인용구를 먼저 나직이 읊조립니다.
이미 훌륭한 시와 글을 세상에 수없이 펼쳐낸 거장이지만, 본인의 글 너머에 있는 타인의 지혜를 얼마나 깊이 체득하고 계신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아마도 나민애 교수 역시 이런 아버지의 곁에서 문장을 사랑하고 수집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겠지요. 타인의 문장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결국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과 닿아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겸손함입니다.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의 언어는 결코 화려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습니다. 질문 하나에도 잠시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담담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입버릇처럼 건네는 말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배웁니다.”
그는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수십 년을 글과 함께 살아온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상대가 누구든 여전히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 마주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낮게 두는 그 태도야말로 나태주 시인을 지금의 자리로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이 그의 시에서 위로를 얻는 이유는 단순히 시어(詩語)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다정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낮은 시선이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가는 글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투가 그 사람의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듯, 문장은 숨길 수 없는 삶의 지문과도 같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글이 그토록 맑고 투명한 이유는,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의 시와 꼭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글을 건네는 사람으로서, 내 문장이 내 삶의 부끄러운 민낯이 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