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인정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해서 우울하게만 지냈던 건 아니다. 대신 내가 선택한 건 앙칼진 성질. 친구들은 공주, 이쁜이, 사랑이 등등의 애칭으로 가족들에게 불리는 와중에 내 가족이 나를 부르던 애칭은 망충이(뭐든 망쳐 놓는다고), 뱀눈(화나면 무섭게 째려본다고), 싸납깽이(성질이 사납다고), 꼴통(꼴통이라고)이었다. 건드리면 으르렁거리고 화가 나면 엄마 아빠한테도 독기 어린 눈으로 대들었다.
나이 차가 6살이 넘는 언니와 오빠한테도 몸싸움을 불사했다. 나이는 물론 힘도 더 센 오빠한텐 얻어맞으면서도 달려들었고, 싸우던 중에 ‘니가 뭔데’라고 약을 올리면 언니는 어린 게 반말을 한다며 울먹거리다가 분에 못 이겨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가 달려와 나를 혼냈지만 흥, 일단 울면 지는 거지. 나는 혼나면서도 속으로 뿌듯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선택적 위악에 불과했다. 마음속이 상처로 가득했던 나는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부풀려야 했으니까.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가 실은 겁이 가장 많은 법.
위악을 떨다가도 문득 속이 상하거나 내 존재의 의미가 의심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면 나는 동네의 모든 골목을 달렸다. 그중, 가게의 옆 골목은 유독 길고 가팔랐다. 50미터? 70미터쯤? 긴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그 끝에서 바로 왼쪽으로 꺾어지는 다른 골목이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가며 구르고 다치길 여러 번, 어느 날부터인가 골목을 빠르게 달려 내려간 나는 단 한 번도 삐끗하지 않고 왼쪽으로 턴을 해서 부드럽게 옆 골목으로 사라지는 기술을 터득했다.
한 번에 달려 내려간 뒤 턴을 하려면 몸을 트는 타이밍과 중심이동이 중요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드리프트 하듯 브레이크를 잡고 원심력과 구심력을 이용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정확히 계산된 중심 이동만으로 회전축을 돌려야 옆 골목으로 흔들림 없이 꺾어 들어갈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나는 결국 눈을 감고도 가파른 골목을 자유자재로 뛰어 내려가고 강물처럼 부드럽게 턴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순간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빠르고 강인하며 거대한 종.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골목의 왕. 나는 길고 강한 여덟 개의 다리를 지닌 무시무시한 타란튤라다. 엉덩이에서 실을 뽑아내듯 나는 계속해서 달리며 골목과 골목을 찾아낸다. 주위의 모든 골목과 다른 동네의 골목까지 누비며 거침없이 달린다. 바람이 여덟 개의 다리 사이로 지나며 부숭부숭한 털을 간질이면 나는 꺄륵꺄륵 웃으며 골목을 달린다.
몇년 전, 어느날인가 문득 그곳이 생각나 찾아가 보았다. 빠르고 거대한 거미가 되어 눈부시게 달리던 그곳.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골목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아예 동네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중인 듯했다. 여기저기 펜스가 쳐있고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바람 속에 온갖 감정을 흩뿌리며 달리던 수많은 골목 중 남아 있는 건 겨우 몇 군데뿐이었다. 한참을 골목 안에 서 있던 나는 그곳마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에 서둘러 사진을 몇 장 남기고서야 그곳을 떠났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을 덜컥 잃어버렸다. 늘 그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자신이 오롯이 누비고 다니던 동네가 남아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아무 때나 찾아가서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내 눈물과 웃음이 바람의 덩어리가 되어 달리는 등뒤를 따르던 시절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사라져 버렸다. 나를 다독여주고 일으켜줬던 장소를 앞으로는 영영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가끔씩 울적해진다.
오늘도 옛 골목을 찍어 두었던 사진을 열어보았다. 사진 속에서 여기저기 빠르게 뛰어다니는 나를 본다. 길고 긴 골목, 어둡고 좁은 골목, 가파른 골목, 뱅글뱅글 돌아가던 골목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탁탁탁.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나를 조용히 위로해줬던 골목. 가슴을 짓누르는 슬픔과 외로움, 깊은 서글픔이 한순간에 바람 속으로 흩어져 나를 웃게 만들었던 그 골목이 그립다.
유년시절 형성된 과거-보들레르가 “유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푸른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통스러운 향수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순수한 시절을 다시 구성해 보고 싶다든가, 또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마저 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의미이다.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미셜 투르니에-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들만큼의 이해와 사랑과 인정을 받았더라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남들만큼이라는 건 어느 정도를 얘기하는 걸까? 얼마나 받아야 나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일까? 남들만큼, 남들보다 더 받았던 들 내가 진짜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아니, 확신할 수 없다. 좀 더 유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보다 훨씬 멋진 인간이 될것 같진않다. 설사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다시금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많이 받았더라면 나는 더 잘 살았을 텐데. 이것밖에 못됐어’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될지 모른다. 꼬리를 입에 문 고대의 신화 속 뱀, 우로보로스처럼.
그래도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골목을 오래도록 달리고 싶다. 전처럼 계단을 마음껏 오르지 못하는 날들이 지속되고보니 타란튤라의 시절이 그리워 진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곧 바람을 맞으며 여덟 개의 거대한 다리로 빠르게 달린다. 똥구멍에서 골목을 내뿜으며 달린다. 길이 없는 곳에도 골목은 있다. 부왕 부왕! 엉덩이에 힘을 주면 점점 더 많이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골목들이 손에 손을 잡는다. 불타는 똥꼬에서 힘을 빼지 않는다. 나는 거대하고 힘센 타란튤라. 여덟 개의 징그러운 다리로 빠르게 달리지. 똥구멍의 피가 까매지고 여덟 개의 다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멈추지 않는다. 골목은 점점 많아지고 나는 점점 더 빠르게 골목을 달린다. 그 속으로 사라져간다.
골목_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음
2015년 찾아가 보니 재개발로 동네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중.
몇 개 남지 않은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며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돌아섰다.
목록_
01. 프롤로그_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방식
02. 서점_ 주인 모르게 홀로 팔아버린 책들
03. 리본_ 범인을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린 나
04. 브래지어_ 입었을까 안 입었을까?
05. 미미_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06. S_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07. M_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
08. 아빠_ 간신히 되찾았으나 기어코 잃어버렸다.
09. 분노_ 감정의 잔해더미에서 살아남기
10. 개그감_ 나이가 들면 웃을 일도 사라지고
11. 머리숱_ 자연스럽다기엔 좀 억울하다
12. 성질머리_ 고약한 성질머리도 아이 앞에선 길을 잃네
13. 나이_ 나? 마흔!
14. 사탕_ 슈퍼집 딸이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훔쳤대
15. 골목_ 나는 여덟 개의 다리로 빠르게 달리지
16. 에필로그_ 잃어버려서 잊어버린 걸까,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