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영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감이란 노력을 곁들인 상상력일 뿐

by 민달이

영감은 어떻게 발현되는 가. 그것은 누군가에게 벼락처럼 한 번에 내려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영감을 받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허비한다. 그런 이야기 들을 나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영감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다가 나타나기에 그리도 만나기가 힘든 것인 가.


나의 경험을 빌어 말하자면 나의 영감 중 한 번은 TV를 보다 불현듯 나타났다. 어떤 공모전의 최종심에 올랐던 장편소설은 TV의 한 프로를 보며 구상했다. 오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프로였는데 그 형식이 소설의 뼈대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 중 하나는 황색언론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름의 잃어버린 명예]란 책을 읽고 난 뒤 생각했던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평범한 여자인 카타리나 블룸이 어느 날 언론으로부터 집중 타깃이 되어 자신의 모든 인생이 까발려지다 못해 끔찍한 억측들로 자신이 살아온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자 처음 기사를 냈던 기자를 찾아가 죽이고 마는 이야기다. 한참 전에 하인리히 뵐의 책을 읽고 작금의 언론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에 에피소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수'의 성향은 잘 알고 지내는 지인 중 한 명의 온화한 성격과 비슷하다.

친구들이 보기에 수는 겁도 별로 없어 보였다. 분노, 슬픔, 기쁨. 이런 감정의 극대화가 수에겐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다. 애초에 신이 수를 만들 때 소량의 감정들만 넣었던 걸까? 커다란 기쁨도, 깊은 두려움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직접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자 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자신도 너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단지 남들보다 표현이 조금 서툴 뿐이야.'

너는 어쩌면 식물 인가 봐. 섭의 말에 수가 미소 지었다. 너는 풀 같아. 마치 휘트먼의 시처럼.

‘풀은 희망의 초록색 물질로 짜 만든 내 기질의 깃발인 것 같다’고 노래하던 휘트먼의 시를 읽으면 수가 생각나고 수를 생각하면 휘트먼의 <풀잎>이 생각났다. 그리고 섭과 영과 휘는 네루다의 말처럼 ‘월트 휘트먼의 단단한 이슬’을 밟고 걸었다. ‘소나무 같은 그 이슬의 단단함, 대초원 같은 그 이슬의 광활함’을 마음껏 즐겼던 것이다.


'수'의 온화한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휘트먼의 [풀잎]을 인용했다. ‘풀은 희망의 초록색 물질로 짜 만든 내 기질의 깃발인 것 같다’는 말은 수의 기질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의 친구들은 늘 수의 느리고 선한 성격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받는다. 때문에 친구들은 네루다의 말을 인용해 수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소나무 같은 그 이슬의 단단함, 대초원 같은 그 이슬의 광활함’을 수로부터 느끼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굳이 내 소설의 일부분을 이야기한 것은, 이야기는 결국 모든 것의 조합이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이다. 내 이야기는 내가 티브이를 보지 않았다면 떠오를 수 없었던 뼈대였고 내가 하인리히 뵐과 월트 휘트먼과 파블로 네루다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인물들이었다. 아니 인물들은 나왔겠지만 지금과는 많이 다른 설정과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 소설의 설정과 인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책을 읽고 그때의 프로를 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의 한 조각을 완성한다. 혹은 전체의 경험을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1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이 아니었다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낚시와 사냥의 경험들은 [노인과 바다]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완성할 수 있는 영감을 선사했다. [제5 도살장]의 커트 보네거트야 말 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콩고의 선장이 되어 콩고 체험을 했던 조셉 콘래드는 [암흑의 핵심]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토마스 만은 요양원에서 치료 중인 아내를 방문한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의 산]을 완성했다. 박완서, 아니 에르노, 무라카미 하루키, 아멜리 노통브, 한 강, 조경란과 조남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야기는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모두 상상력일 순 없다. 상상력에도 밑받침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상상력으로 만든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집이라면 그 이야기의 집을 받쳐 줄 수 있는 넓은 대지와 단단한 주춧돌들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바로 당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 순간의 일들이다.


당신이 읽고 듣고 보는 것 모두가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자신의 몸이 된다는 말처럼 당신의 모든 경험이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 자신이 읽은 책들, 영화들, 누군가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 창밖에서 들리는 음악들, 멍하니 티브이를 보던 시간조차 당신이 쌓고자 하는 건축물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영감은 어떻게 발현되는 가. 미안하지만 글쓰기에 영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감을 가장한 순간만 있을 뿐이다. 영감을 가장한 그 '순간'이라는 것은 결국 단단한 대지이며 당신이 쌓아 올린 주춧돌이다. 그 모두는 당신의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소리다. 영감이란 결국 노력을 곁들인 상상력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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