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1.
그날 밤 나는 해리스버그의 역 벤치에서 자야 했다. 새벽에 역장이 와서 나를 쫓아냈다.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인생을 시작하지 않는가? 그러나 곧 자신이 비참하고 불행하고 불쌍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탄에 젖은 섬뜩한 유령의 얼굴을 한 채 와들와들 떨며 악몽 같은 삶을 살아가는 불신의 날들을 맞게 된다.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역에서 나왔다. 더 이상 몸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2.
딘과 내 눈에는 이 나라 전체가 우리의 손이 열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진주조개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진주가 들어 있다. 우리는 계속 남쪽을 향해 달렸고 도중에 또 다른 히치하이커를 태웠다.
3.
전구 바로 아래에서, 마르고 미친 얼굴은 땀에 젖어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 그래, 그래"라고 말하며, 당장 그의 안에 굉장한 계시가 찾아올 듯해서, 나는 이제 곧 뭔가 터지리라 확신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이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그는 '비트' 그 자체였다. -비트적인 것의 뿌리이자 영혼이었다. 그가 알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던가? 딘은 알려고 한 그것을 나에게 말해 주려고 전력을 다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은 나를, 그의 곁에 있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그런 이들도 옛날에는 나처럼 딘을 지키고 딘의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했었다.
4.
우리의 진짜 인생이, 진짜 밤이, 그 지옥이, 무의미한 악몽의 길이 거친 광기와 방탕으로 가득했단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내면은 끝도 시작도 없이 공허하다. 무지가 갖가지 슬픔을 빚어낸다. "안녕, 안녕." 딘은 길게 뻗은 붉은 어스름 속을 걸어갔다.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그의 위에서 흔들렸다. 그의 그림자가 그를 쫒아가며 그의 걸음을, 생각을, 존재를 흉내 냈다. ... (중략)..... 갑자기 딘이 자신의 인생 쪽으로 방향을 휙 바꾸어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나의 날들이 무미해진 것을 바라보았다. 이 앞에도 또 끔찍하게 긴 길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잭 케루악:
비트 세대는, 1951년에 쓴 [길 위에서]에서 이상한 일자리와 여자 친구들, 스릴을 찾아 자동차를 타고 미국을 돌아다니던 모리아티 같은 남자들을 설명하려고 쓴 문구였을 뿐이야. 그 뒤로 웨스트코스트 좌익 단체들이 그걸 알게 되면서 '비트 반란'이나 '비트 폭동'처럼 헛소리 같은 의미로 바꿔 버렸지.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붙들 청년운동이 필요한 거였어. 난 그런 것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 나는 미식축구 선수였고, 대학 장학생, 상선 선원, 철도 화물 조차장 직원, 영화 스크립터, 비서였지. 그리고 모리아티, 즉 캐서디는 콜로라도 주 뉴레이머에 있는 목장에서 진짜 카우보이로 지냈어. 그게 어떤 종류의 비트족이란 말인가?
스나이더는 웨일런과 다르고, 웨일런은 매클루어와 다르고, 나도 매클루어와 다르고, 매클루어는 퍼링게티와 다르고, 긴즈버그는 퍼링게티와 다르지만 어쨌거나 우린 모두 와인을 마시며 재미있게 보냈지. 우린 수천 명의 시인들과 화가들, 재즈 음악가들을 알고 있었어. 자네가 말하는 '비트무리' 같은 건 없다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잃어버린 무리'라고 하면 어떤가? 자연스럽게 들리나? 아니면 괴테와 그의 '빌헬름 마이스터 무리'는? 그 주제는 정말 지루해.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길 위에서]는 어느 부분을 뽑아도 모두 그의 일상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가 떠난 여행의 모든 순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써 내려간 그의 일기 같은 글이므로. 그는 [길 위에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생각해내고, 친구들에게 그것에 관해 긴 이야기를 들려준 뒤 머릿속으로 궁리하고, 한가할 때 그걸 하나로 연결한 다음, 집세를 낼 때가 다가오면 타자기나 글 쓰는 공책 앞에 억지로 몸을 앉히고 빨리 해치워 버리는 거야. 이야기 전체가 준비돼 있으니까."
문단은커녕 띄어쓰기조차 엉망진창으로 써버린 글. 영혼을 갈아엎듯 구두점도 없이, 종이들을 테이프로 연결해 두루마리처럼 길게 이어 미친 사람처럼 적어 나갔다. 처음 그의 글을 받아 본 편집자는 이걸 어쩌라는 거냐며 기함을 했다고. 비트 세대의 신화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한몫을 한 새로운 문체는 작중 딘 모리아티인 닐 캐서디가 케루악에게 보낸 자유분방한 편지들을 보고 구상했다고 한다. "일인칭 시점에 빠르고 열광적이고 고백적이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게 그 시대의 속도와 불안과 황홀한 바보짓을 표현할 유일한 길이었다고 생각했다네."라고, 인터뷰어의 질문에 케루악은 대답한다.
군중을 이끄는 예술가. 비트 세대의 선두주자! 그의 글은 진짜야. 끝내줘. 와, 이건 읽자마자 진짜 그 시대의 유행을 이끈 게 틀림없어, 이게 바로 비트세대의 신호탄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글이 대단하다는 걸 나도 느낄 정도였으니 당대의 젊은이들은 당연히 더욱 열광했을 것이다. 그의 책은 점점 유행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열광한다. 당연히 잭 케루악도 자랑스러워하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이끈 문학의 새로운 시도였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광적인 모습들에 회의가 들었던 걸까? 그는 코웃음을 친다.
" 그것을 '비트 반란'이나 '비트 폭동'처럼 헛소리 같은 의미로 바꿔 버렸지.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붙들 청년운동이 필요한 거였어." 자신은 그런 가벼운 유행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투덜댄다. 그저 미식축구 선수였고, 영화 스크립터였으며 비서였을 뿐이라고.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야 이, 미친 자식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부랑자 모리아티는 그저 목장의 카우보이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잭 케루악은 그게 무슨 종류의 비트 족이냐고 소리친다. 정작 작가 본인은 시큰둥한데 부추기는 사람들의 설레발에 동화된 것 같아 어쩐지 머쓱해지는 기분.
하지만 본인이 앞장서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앞에 서 있는 경우라면 그것이 진짜가 아닌가! 세상에, 그럼 그는 진짜 천재가 맞는 거였다. 그래, 그의 마음이 어떻든 간에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비트세대의 영웅이다. 케루악의 묘사대로 딘 모리아티는 비트 그 자체였고 그와 친구들은 완벽한 비트닉이었으며 잭 케루악은 [길 위에서]라는 명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인 것이다.
자전소설이나 여행기 같은 논픽션이 가미된 소설은 소설인가, 소설이 아닌가? 어려운 이야기다. 소설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읽으면서도 갸웃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류의 소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생생한 현장감. 읽는 이로 하여금 그곳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현실적인 느낌이 가득하다는 장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나 곧 떠날 여행들로도 논픽션 소설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으로 그려야 하는 픽션보다 조금쯤 쉬울 것도 같다. 그럼 한 번 써볼까? 어쩐지 솔깃해지는 부분이다.
'그 시대의 속도와 불안과 황홀한 바보짓'이라고 표현한 그 시대에 태어났던 케루악은 행운아였던 걸까? 기적적으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비트세대의 맨 앞에 선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행운일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는 그저 그의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그는 그의 시대를,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쓰면 된다. 평범한 시대를 살며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 또한 후대의 누군가에게 우리가 작가로서의 행운아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각자의 삶, 각자의 시선, 각자의 생각일 뿐이다.
상상력만으로 소설을 쓰자니 어쩐지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짧은 논픽션이나 논픽션 소설을 써보자. 당장 무언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것과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들을 그대로 쓰는 법부터 시작하자. 당장에 케루악처럼 소설이 줄줄이 나오진 않겠지만 내가 주인공이 된, 내 일주일간의 행적에 소설적 느낌을 첨가해서 적어보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
당신이 며칠 전 걸었던 거리와, 어제 점심을 먹었던 음식점, 친구와 잡담을 나누었던 카페와,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공원의 벤치, 당신의 하루를 어루만져 줄 가족들과, 편안히 잠이 드는 순간의 행동까지. 아무리 사소한 일들이라도 모두 적어보자. 당신의 일상은 좋은 논픽션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서 사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순간순간 작품이 된다. 하루의 부분들은 소설의 부분이 되고, 사소한 일상의 사건들은 작품 속에서 커다란 실마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하루의 모두를 기록한 당신만의 논픽션을 읽어보라. 활자화되어 있는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반짝이는 조각들을 주워 자루에 담으면 된다. 곧 자루 속의 보석들이 쓰일 날이 올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