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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Apr 29. 2021

이게 다 클럽하우스 때문이다

1. 클럽하우스를 가입하고서, 글이라는 것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이 글들은 내가 글이라는 것을 쓰게 된 계기와 쓰면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쓰는 일종의 '메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내 글에 대한 변명이자 핑계고, 근거이자 증명이고 싶은 글이다.

사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은, 30대가 되기까지 나를 구성하는 요소를 거의 기록하지 않았었다는 부채 의식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이라고 너그러이 봐주면 좋을 것 같다.




2021년 설 연휴 즈음이었다. 한창 클럽하우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있다면 일단 해봐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 어떻게든 가입을 하고 싶었다. 레딧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초대장을 구입하여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다.

10년 전 트위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이용자들이 원할만한 토픽으로 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모이고 있었다. 너무나 그 모습이 유사했다. 더 놀랐었던 것은, 10년 전 트위터에서 국내 팔로워 1위로 유명했던 어떤 분이 클럽하우스 초기에도 보였다는 것이었다.


뭔가 얻고 싶었다. 업계에서의 인사이트를 얻는다던가, 사회인 박재율이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그런 류의 방에서는 언제나 꼰대가 있었다. 현생에서는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건지, 클럽하우스에서 그 꼰대들은 방에 들어와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 꼰대 같은 말이 짜증 났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꼰대가 하는 말을 들어도 거기서 이득을 취할 정도의 여과 장치는 내장되어있다. 다만 내가 저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나를 압도적으로 지배했고, 그런 류의 방은 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가벼운 방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성대모사 방 같은 곳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잔잔히 이야기할 수 있는 방에 들어가서, 소수의 사람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툭 툭 던지며 있었다. 맘에 드는 사람들은 팔로우도 하며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리기도 했다.

방 목록을 새로고침 했을 때, 내가 팔로우한 사람들이 몇 모여있는 방이 있었다. 반가워하며 냉큼 들어갔다. 누군가 낭독을 하고 있었다. 냉큼 마이크를 끄고 들었다. 나지막하면서 강약이 있는 그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었다. 내용도 참 감각적이었다. 가락이 없었지만 노래였고, 운율이 없었지만 시였다. 나도 서툰 표현으로나마 감상을 짜내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재율 님은 글 안 쓰세요?


네? 글이요? 음성 기반 SNS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네.라고 대답했다. 급하게 사람들의 프로필을 눌러봤다. 모두가 블로그나 SNS가 있었고, 그곳에 글을 쓰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글을 쓰지 않는 내가 비주류였다.

다행히도 내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또 각자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난 들으면서도 머릿속 한 켠에서는 조금씩 켕기기 시작했다. 나도 글을 써야 되는 거야? 내가 이상한 거야?


내 삶의 전공을 굳이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형식 과학, formal science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밀하게는 과학이 아니다. 물리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이 아니다. 수학, 논리학, 암호학의 성향을 말한다. 경험적 사실을 배제한, 닫혀 있는 성향의 어떤 것. 난 그것을 내 강점이자 약점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런 인간한테 무언가 글을 쓴다?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닌 이상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 글감이 있는 사람이다.

난 20대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궁상. 가난. 곤궁. 구질구질. 온갖 유의어를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릴 것이다.


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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