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구름에 해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숨 돌리기에 눈이 참 편했다. 머리를 비우고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두 모금인가 뱉었을까, 기분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비 냄새였다. 담배를 잠시 입에서 떼고 눈을 감은 채 한껏 들이마셨다. 미처 비의 기운을 다 뱉어내기도 전에, 팔뚝에 살포시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비가 꽤 오려나. 다행히도 많이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건물에 들어갈 때 즈음엔 안경에 조금은 이슬이 지겠지만 상관없었다. 딱 좋았다.
이 정도의 이슬비는 참 좋았다. 언제나 좋았다. 군대에서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군대에서는 아침에 비가 오면 실내 점호를 했다. 연병장으로 나가서 뜀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슬비는 생활에 지장도 없었다. 그저 상쾌하기만 했다. 그 팍팍한 곳에서 얼마 안 되는 낙이기도 했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부터는 다른 의미로 그랬다. 강남, 구로, 논현 그리고 평촌. 내가 옮겨 다닌 빌딩 숲속에는 콘크리트만 무성하다. 자연이 지독히 그립다. 하늘을 보고 싶어도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다. 밤에 겨우 시간을 내어 건물을 피해, 앞이 트인 곳으로 가도 캄캄할 뿐이다. 별이 없다. 보름 즈음이 아니면 달조차 보기 힘들다. 가끔 도시를 피해 자연으로 놀러 갈 때, 밤하늘에 누가 일부러 흩뿌린 듯 박혀 있는 별이 보이면 차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멍하니 보곤 한다. 그 와중에 오늘처럼 기척 없이 찾아온 이슬비는 약속 없는 토요일 점심에 불쑥 연락 온 친구처럼 반갑다. 건조한 콧속을 자연의 냄새로 촉촉하게 적셔주는 비 냄새는 삽시간에 날 어느 산골로 데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참 좋다. 가끔 아침의 일기예보에 구름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혹시나 일기예보가 오후에 비로 바뀌지 않으려나 하고 조금 설레기도 한다. 올해는 아직 여름이 발끝만 들이밀었는데, 유난히 비가 자주 왔었다. 이래저래 난 참 좋기만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올해는 비가 쭉 자주 왔으면 좋겠다. 욕심을 더 내자면 가랑비가 되기 직전의 이슬비로 왔으면 좋겠다. 바람도 좀 불었으면 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비 냄새를 나에게 전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