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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18. 2021

압구정벌레와 여름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저녁 시간의 강변역은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때쯤이면 사람도 거의 없어서 열차가 들어올 때를 제외하면 플랫폼이 거의 한 폭의 그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고즈넉한 역에 서서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아아. 이 정도면 꽤 좋잖아?'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서울이지만 왠지 시골 같은 편안함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수년 전 여름, 엄청난 수의 날벌레에 강변역이 지배당했던 적이 있었다. 역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플랫폼 천정의 라이트가 켜지면 지구 상에 있는 날벌레들이 모두 강변역으로 몰려들었다.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는데, 아나운서는 그 벌레를 '압구정 벌레'라고 했다.(왜 압구정 벌레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음) 그 벌레는 2 급수인 물에서만 사는데, 한강의 수질이 좋아졌기 때문에 갑자기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강이 깨끗해진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징그러운 벌레 수천 마리가 떼로 달려드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필름이나 영상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생생한 공포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몸을 흔들어 떨쳐버린다 해도 확률상 몇 마리는 목덜미에 앉아 천천히 피를 빨아댈지도 모른다.(다행히 피는 빨지 않는다고 함) 매일 저녁마다 날벌레의 공격을 마주하다 보니 차라리 냄새나는 한강이 더 정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이듬해  날벌레는 강변역에서 자취를 감추고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강이 다시 더러워진  아닐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다시 저녁의 평화로운 강변역을 돌려받은 이상  정도는 참아야 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농담) 어쨌든 요즘 밤의 강변역은 엄청나게 평화로우니 딱히  일이 없는 분들이라면 천천히 방문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딱히 할만한  있는 데는 아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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