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얼마 전에 LP플레이어를 구입하고는 심심하면 중고서점 등에 가서 LP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레코드점이나 기타 센터에 가면 최신 LP들도 대부분 발매가 되어있긴 하지만, 사실 최근 앨범들은 디지털로 듣는 것이 더 편하고, 음원의 퀄리티도 좋아서 바늘과 LP사이의 정전기 소리가 편하게 들릴 것 같지 않다. 덕분에 신기하긴 하지만 크게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중고 LP들을 뒤적이고 있다 보면 먼지도 폴폴 나고 LP에는 스크래치가 없는 것이 없으며 대부분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희한한 앨범들 뿐이다. 가끔은 내지도 없이 재킷에 바로 LP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그 대신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해서 몇 개 사서 들어보고 별로 맘에 안 드는 것은 부담 없이 정리해버릴 수 있고, 가끔 뒤지다 보면 정말 눈물 나게 반가운 앨범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다.
귀가 중 별생각 없이 들러 중고 LP들을 뒤적이다가 발견하게 된 Chuck Mangione의 'Feels so good' 앨범은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이 앨범은 1977년에 발매된 앨범인데 그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은 혼 연주자였던 그를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었다. 가장 유명했던 'Feels so good'이란 곡은 트럼펫의 일종인 '플루겔혼'으로 연주한 재즈 넘버이다. Chuck Mangione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플루겔혼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트럼펫이 임신을 하게 되면 플루겔혼이 됩니다
어쭈. 이런 대답은 참 기발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만 들으면 '뭐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악기의 모습을 보게 되면 '아 정말 그렇구나'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플루겔혼'은 마우스피스가 깊고 벨 부분이 넓어 소리가 부드럽고 저음의 퀄리티가 더 좋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수백 번 돌려 들었던 나도 아직까지 그 차이를 잘 모르겠다.
척 맨지오니의 작품이니 '플루겔혼'이 전체 곡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내 귀에 가장 착착 붙는 기분 좋은 멜로디는 Grant Geissman의 일렉기타 파트다. 약간 텁텁하고 터프한 플루겔혼의 메인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되면 스멀스멀 나와 프라이팬에 버터 녹이듯 능숙하게 곡을 이끌어가는데, 특히 그 밴딩은 예술이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하이햇과 라이드 심벌에서 8분 음표와 16분 음표 섞인 마디들을 능숙하게 때려대며 곡의 텐션을 흥겹게 끝까지 유지시켜주는 James Bradley Jr. 의 드럼도 역시 일품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도입부의 '플루겔혼' 솔로 부분에 들릴 듯 말듯 받쳐주기만 하는 통기타는 도입부의 분위기를 더욱 우울하고 애잔하게 만들어주어 이후 흥겨운 파트로의 진입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누가 연주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 곡은 악기별 파트의 치밀한 배치와 연주력을 통한 완벽한 구성으로 마치 한편의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덕분에 9분이 넘어가는 긴 곡이라는 것을 대부분 모를 것이다.
어쨌든, 내게는 Depapepe의 'Summer Parade'나 T-Square의 'Sunnyside Cruise'등과 함께 몇 개 안 되는 해피송 중의 하나인 이 곡을 4.5불에 집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복권을 한번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