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지역 정보 뉴스를 보면 내일은 'Silent Disco Dance Party'가 바트(지하철)에서 열린다고 한다. 오후 3:30분에 Ashby역 위쪽 플랫폼 계단에서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Fremont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바트 티켓은 당연히 사야 하고, 헤드폰 대여 비용은 11불이다.
규칙은 바트 정책 그대로 적용되어 플랫폼이나 객차 안에서 담배, 음식, 음료를 마시는 것 등이 동일하게 금지되며,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이 이벤트가 바로 중지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대충 이 정도만 적혀있는데,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헤드폰을 낀 채로 열차 손잡이를 잡고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 디제이까지 초청하는 것을 보면 음악을 미리 나누어준 헤드폰으로 무선 송출해주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 봉을 잡던 바닥에 눕던 흥나는 대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한마음으로 동일 비트에 몸을 흔들겠지만, 이벤트와 상관없는 승객이 보기에는 왠지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보일 것 같다.
'미국에는 이상한 이벤트도 많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이들이 올려놓은 사진에 이상한 점이 있어서 한참 쳐다보게 되었다. 기사의 이전 이벤트 사진을 보면 서너 명이 봉에 매달려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데, 그중 가장 과격하게 매달려 있는 여자의 머리에 헤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화보 촬영 후 그 상태로 바로 퇴근해버린 레이싱 걸인 그녀는 마침 지하철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만한 책 한 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앞사람이나 창 밖 풍경을 쳐다보며 가는 것도 슬슬 지겨워질 무렵, 갑자기 지하철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뛰어들어와서는 신 들린 듯이 춤을 추어대는 것이다.
'그래! 이거면 목적지까지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겠어!'
마침 복장도 댄스에 어울렸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다른 사람들처럼 봉에 매달려 허리를 꺾기 시작했다.
'책을 안 가져오길 역시 잘했어!'
예기치 못한 전화위복 상황에 탄력 받은 레이싱걸은 음악도 없는 객차 안에서 더욱더 난도 높은 각기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정도였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른 상황은 떠오르지 않는다.
한 3~4년쯤 후라면 고막 바로 앞쪽에 미농지 두께의 무선 이어폰을 쑤셔 넣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더욱더 자세히 보니 헤드폰이 중력과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목 언저리에 슬픈 두더지처럼 걸려있네요. 진정한 댄서에게는 음악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