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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보내기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오늘은 이삿짐을 보내는 날이다. 며칠 동안 짐들을 모두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 포장을 하는데, 생각보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데는 이것저것 꽤 많은 게 필요한 거구나.


그러게 되었다. 윤상의 '이사'를 반복해 들으며 열심히 차곡차곡 정리를 한다. '이사'는 연인과의 이별을 이사에 비유한 예쁜 곡이지만, 정말 이사를 할 때에도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짐들은 모두 그대로 보내져 다시 볼 수 있겠지만, 그 물건들이 위치하던 자리가 비어 가는 것을 보니 왠지 기분이 점점 쓸쓸해졌다. 아마 이 방은 더 우울할 것이다.


아침이 되자 건장한 멕시칸 아저씨 세 분이 이삿짐 처리를 위해 방문했다. 척척 박스를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금세 열 개의 박스로 정리해 모두 트럭에 실어버렸다. 프로인 것이다. 물 한잔 달래서 꿀떡꿀떡 들이키더니, 사인한 용지를 척척 접어 나를 주고는 시익 웃는다. 엄지를 들어주고 내 어깨로 그 사람 어깨를 툭 친 후 같이 웃어주었다.

트럭에 올라타는 작업자 분께 지갑에 남아있는 현금을 모두 팁으로 드렸다. 이제 현금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천천히 방에 올라오니 일 년 전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처럼 휑 하다. 그때도 휑 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사하고 난 방을 정리한 후, 남아있는 옷과 침구류를 들고 빨래를 하러 갔다. 확인하니 빨래 카드에 잔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충전은 현금으로만 가능한데 말이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가까운 은행에 가서 현금을 조금 뽑았다. 가져온 세탁물은 남은 며칠 사용한 후 버리고 갈 것들이라 왠지 미안해져 세제도 듬뿍 넣고 건조도 세 번씩 해주었다.

추워 죽겠을 때 친구들에게 뭘 사야 할지 몰라 물어보면서 샀던 정든 이불도 건조가 다 되었다. 문을 열고 열풍에 따뜻해진 이불을 꺼내려다가 잠시 두 팔을 밀어 넣고 얼굴을 묻었다. 오늘이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빨래일 테니 조금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곳에 왔을 때 많은 이들에게 조금씩 받았던 물건들을 정리해서 되돌려주었고, 또 되돌려 주려 합니다. 이 물건들은 언젠가 또 저처럼 샌프란시스코에 불시착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겠죠?

이 집에 새로 들어오시는 분이 룸에 달려있는 전구가 와이파이 기능이 있는 스마트 전구임을 알아채고 잘 사용하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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