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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바다와 여우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by Aprilamb

요즘은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고는 한참 동안 아무 음악도 플레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도 헤드폰을 내려놓고 스타벅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그냥 듣고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돈을 내고 사용하게 된 음원 서비스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음원이 등록되고 있고, 어떻게 내비게이션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많은 곡이 준비되어 있었다. 분명히 비집고 들어가면 잠들기 직전까지 돌려 듣던 그때 그 인생 음악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테지만, 난 늘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으로 메인화면에 멈춰있게 된다. 엄두가 나질 않으니까. 전 세계의 모든 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니. 음악을 들으려 할 때마다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힘들게 구한 음원들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분류로 내 기기에 차곡차곡 담아 다니며 음악을 들었던 것도 그 이전 세대들에게는 낯선 방식이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즐긴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직접 고르고 골라 손에 쥐고 있던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는 늘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있을 정도였고, 음악을 들을 때도 다음에 어떤 곡이 재생될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그렇게,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듯 두근두근 기다렸던 것 같다. 내가 듣고 싶은 그 곡이 재생되기를 말이다.

얼마 전 친구가 내게 이야기했다.

'요즘에는 뭐 고르는 게 싫어. 그런 것에 고민하는 게 귀찮아.'

그렇게 된 것에는 주변에 신경 쓸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되어 어느 하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어져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역시 문제는 선택의 순간에 모집단의 크기가 상상을 넘어서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 순간에는 모든 경우의 수만큼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니까. 선택하지 않은 경우의 수를 버릴 명확한 근거는 마련해두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음원 서비스에서는' 잘 모르겠니? 그러면, 내가 일러줄게.'하며 여러 플레이리스트를 큐레이팅 해주고 있지만, 나는 내가 선택하고 싶고, 여전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인기곡 리스트를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오랜만에 예전 친구에게 공유해주던 곡을 저장해 두었던 폴더를 열었다. 그중 김광민의 앨범이 모여있는 폴더가 보인다. 친구가 좋아해서 따라 들었던 곡들이다.(이전에는 연주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계속 다른 연주곡들을 찾아 듣게 되었다) 그중 Letter from the earth 앨범 전부를 리스트에 올리고 무작위 플레이를 시켰다.


그리고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Amazing Grace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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