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가끔 주변 환경이나 생활 패턴이 변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교적 큰 변화도 있고, 그런 게 무슨 변화냐고 할 정도로 소소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계획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문득 인지하게 된다.
가을이 온 지 한참 뒤에 '아, 가을이구나.'하게 되는 것처럼.
윈도 10부터 윈도 헬로라는 편리한 로그인 방식을 지원하는데, 서피스 4(마이크로소프트에서 직접 생산하는 태블릿)부터는 리얼센스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특별한 장치 없이도 '얼굴인식' 기능을 사용할 수가 있다. (리얼센스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 외에 적외선 레이저 프로젝터, 적외선 카메라가 추가되어 있는 3D 인식용 장치인데, 주변이 어두워도 얼굴의 고저차이나 주변 조명에 의한 얼굴 형태 변화를 보정해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이 생각보다 편리하다.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면 '인증을 시도하고 있구나.'하고 인지하기도 전에 스르륵 로그인이 되어 버린다. 하품을 하고 있던, 찡그리고 있던, 기침을 하고 있던. 그냥 스르륵이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는,
'나는 로그인을 하고 싶은 게 아니고, 로그인 화면을 구경하고 싶다고!!'
라고 해봤자 그냥 스르륵, 거의 노타임으로 바탕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래서는 로그인 화면의 이미지를 고르기 위해 고심할 필요조차 없는 것 아닌가? Microsoft 내부의 로그인 화면 이미지 제안 기능을 담당하는 팀은 이 얼굴인식 기능 때문에 존폐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맥북으로 작업을 해야 해서 한 서너 달 동안 서피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구동시키기 위해 전기를 먹이고 얼굴을 가져다 댔는데, 로그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를 단정히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앙 다물어도 역시 로그인은 불가능했다.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달라진 점을 찾아보려고 서너 달 이전의 얼굴 사진을 봤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꽤 많이 길다. 분명히 '조금 길러볼까?'하기는 했지만, 이전 사진을 옆에 두고 보니 '이렇게 많이 길었나?'하게 될 정도였다.
그것 외에도, 머리가 길어 스프레이나 왁스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게 되니 아침에 머리를 만지는 시간도 꽤 줄었다. 자전거를 타는 습관이 든 이후로는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여러 이유로 구독해지해버린 이후로는 다시 가끔 음악파일을 직접 찾아 폰에 집어넣게 되었고, 이런저런 디자인 관련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시간이 남아도 글을 쓰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치 못 채겠지만, 이런저런 변화들로 나는 서너 달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이다.
‘혹시 이런 변화들 때문에!?’
그건 아니겠지.
천천히 윈도 10의 얼굴인식 관련 공식 기술문서를 뒤지다 보니, 이 기능은 여러 복잡한 기술을 적용하여 얻어낸 얼굴 표면 정보로 판단하기 때문에 헤어스타일 등의 변화에도 문제없이 얼굴을 인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난 왜 로그인할 수 없는 거지?'
문서를 조금 더 아래쪽으로 이동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작동 중 랜덤에러(외형에는 확실히 사용되고 있으나 보편적 인류 다양성에 부합되지 않는 데이터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에러)가 발생할 수 있음.
'뭔 소리야?'
어쨌든, 얼굴인식 로그인이 갑자기 불가능 했던 것은 - 시스템에 대해 인류가 보편적으로 인정해주는 마법의 열쇠 같은 문제의 원인 - '에러'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