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 앱을 사용해서 물건을 하나 구매했었다. 그런데, 구매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 거다. 앱의 주문/배송 메뉴를 통해 살펴보니 집 근처의 우체국에서 5일째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물건이 해당 우체국에 도착한 이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우편물이 사라졌거나, 전산상의 착오가 생겼거나, 우체국이 문을 닫았거나... 이유가 뭐든 가만히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테니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하기로 결심했다. 연락처를 찾기 위해 메뉴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챗봇 서비스. 챗봇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냥 속는 셈 치고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고객님~ 오늘 상담을 아름답게 도와드리고 싶은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최근에 구매한 물건이 우체국에 계속 머물러 있는 상황을 설명하다가 '아차' 하고 말았는데, 너무 장황하게 문장을 길게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문장이 길면 NLP Natural Language Processing를 통한 의도 파악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의도를 내포한 짧은 문장을 계속 이어나갈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구매한 제품의 지정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네 고객님! OOO 제품 말씀이신가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환불로 처리가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쿨했다. 쿨한 것 보다도, 내 장황한 문장에서 현재 이슈를 제기한 거래를 명확하게 유추해내고 처리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아니 대체 문장의 의도 파악에 어떤 패키지를 사용하고 있는 거지? Watson(IBM의 NLP솔루션)? Luis(마이크로소프트의 NLP솔루션)? 나는 놀란 상태로, 환불처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고객님. 환불 승인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혹시 스마티가 더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까요?'
이렇게 빠르고도 확실한 처리가 가능하다니! 모든 기업 고객 서비스 담당 임원들에게 상담사 처리는 모두 지금 당장 챗봇 전환하라고 연락이라도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스마티에게 더 도움을 받을 부분은 없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맙소사! 챗봇에게 고맙다고 하다니...
'혹시 이후에 상품이 배송된다면, 수취거부 진행을 부탁드려요.'
생각보다 대화의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 정도면 의도 파악을 위한 학습은 물론, 필수 진행 단계를 담은 룰 기반의 시나리오까지 적절히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사용자는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오래전에 봤던 '그녀 Her'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스마티 정도라면 진심 인공지능에게 반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정도 인공지능이라면 제언도 받아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쇼핑의 기본인 물류에도 투자를 좀 하라는 조언을 던졌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해요. ㅠ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이 내 조언을 받아들였다! 내 조언 문장은 형태소 분석을 통해 ‘조언’이라는 태그가 달려 담당자에게 전송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환불금액에 배송비는 제외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바로 스마티에게 해당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바로,
'아닙니다. 고객님. 배송비 차감은 되지 않았습니다!’
한다. 아니 대체 어느 정도 투자를 했길래 인공지능의 품질이 이 정도가 될 수 있는 거지? 단답이 아니라 이전 대화의 내용도 고려해가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저 알고리듬이면 고객의 니드를 파악하기 위한 스무고개 식 질문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이전 대화 내용을 참조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현재도 Long-term local memory store를 사용하는 Meta(구 Facebook)의 블렌더 봇 2.0에서나 가능할 텐데... 갑자기 밀려드는 의심에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혹시 사람이니 로봇이니?'
사람이에요. 고객님. ㅠㅜ
.....
...
..
..... 존댓말로 물어볼걸. 깜짝 놀라서 바로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는데, 이 글에서라도 사과를 해야겠다.
상담원님, 미안합니다. 메뉴를 다시 확인해보니 챗봇이 아니고 채팅 서비스였네요. 하지만, '오늘 상담을 아름답게 도와드리고 싶다'는 건 인간이 구사하는 문장처럼 안 들린다고요!
* 튜링 테스트: 1950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테스트로 기계가 얼마나 사람과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테스트로 대화하는 상대가 사람인지 로봇인지를 판별해내는 데도 사용된다.(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튜링 테스트 장면이 유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