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뮤니(샌프란시스코 버스)를 타고 다닌지도 한 달이 다 되어 클리퍼 카드를 연장하러 편의점에 갔다. 클리퍼 카드는 네 가지 교통수단을 각각 일정 금액 혹은 한 달 정액 중 하나를 선택하여 충전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인데, 지난달에는 뮤니만 한 달 정액을 충전하여 사용했었다. 그런데, 오늘 충전하러 갔더니 친절한 점원이 뭔가를 제시한다.
"십오 불만 더 내면 바트까지 맘껏 같이 탈 수가 있는 것 아시나요?”
"아... 십오 불만? 하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십오 불’이라고 하면 ‘천오백 원’처럼 들린다는 거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삼십 불이라고 씌어있는 세일 코너에서 ‘와 티셔츠가 삼천 원이야!’ 하고 세 장 집어온 적도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한 번도 바트(지하철)를 타 본 적은 없었지만, 이 기회에 좀 더 기동력을 높여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같이 신청을 하고 말았다.
충전을 한 후 -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 Rincon Park 근처로 바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 근처에 바로 지하철역이 있어
처음으로 바트를 타 보게 되었다.
긴장하면서 역으로 내려갔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지하는 라비린토스인 건지 내려오자마자 헛갈리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지도를 자세히 보니—나는 뮤니와 바트만 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뮤니 메트로를 타라고 한다. 그것을 타기 위해 또 충전을 해와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약속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냥 미친 척하고 클리퍼 카드를 뮤니 메트로 입구 개찰기에 대 버렸다.
삑~
이럴 줄 알았다. 더럽게 창피함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대 봤지만 역시.
삑~
난처한 표정으로 개찰기 앞에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쑥 내밀고 나한테 물어본다.
"카드를 대면 거기 뭐라고 쓰여있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개찰을 했다고 쓰여있었다. 나는 뮤니와 바트만 탈 수 있는 사람인데...
"이미 개찰을 했다고 쓰여있는데요?”
"그럼 이리로 오세요.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노숙자 들어가는 입구인 건지 그냥 열려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나중에 알아보니 뮤니 정액은 뮤니 매트로도 포함) 왠지 이득 보는 기분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간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뭘 타고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선 가까스로 방향을 확인한 후 타야 하는 쪽 벽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확인하니 이 역에는 J, L, M, N, T라인 열차가 모두 다닌다. 한국은 한 라인에 같은 차만 들어오는데 이 곳은 다섯 대가 한 라인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타야 하는 것은 N라인이기 때문에 그 열차만 타면 된다.
먼저 M라인이 들어왔다. 그 이후 J, L, M, T 라인 열차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내가 타야 하는 N은 오지 않는다. 보통 확률상 서너 번 안쪽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마지막에 걸리게 될 확률은 만약 저 라인들이 겹치지 않고 순서대로 들어온다고 가정해도 0.8% 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뭔가 의심이 가는 순간에 들어온 S라인 열차! 아니 S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난 아직도 그 열차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고 있다.(노선도에도 없는 이 열차의 정체를 혹시 아시는 분?)
다행히 다음에는 N라인 열차가 들어와서 무사히 승차했지만, 승차 이후에도 혼란스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선 지하철 내부에 뮤니처럼 정차를 요청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지하철이 역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나? 여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이다.
조금 타고 가다 보니 Pier 쪽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뮤니처럼 이동했던 것은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더 이상 복잡해지고 싶지 않아. 게다가, 이미 약속시간에 한참 늦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