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prilamb Jul 28. 2018

덤보 DUMBO와 식욕

맨해튼, 오늘 날씨는 맑음

일 관계로 뉴저지에 오게 되었는데, 토요일에 도착했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는 일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일정이 그렇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기는 했지만, 여행을 다닐 때도 딱히 돌아다닐 곳을 찾아보고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호텔 근처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시간 때우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갔던 동료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자 빨리 나갑시다. 급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급한 일은 없었지만, 줏대 없는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따라 나갔다. 뭘 하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스타벅스는 도시에 널려 있으니 따라 나가면 커피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 우리는 호텔을 뛰듯 빠져나가 패스(PATH: 뉴욕에서 뉴저지를 연결해주는 지하철)를 타고 1 WTC(제 1 세계 무역센터)로 나갔다.

내가 뉴욕에 마지막 왔을 때는 9.11 테러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어서 그 지역은 그라운드 제로로 불렸고, 한참 새로운 무역센터 건물이 착공되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피폭 중심지의 지표면을 뜻하는데, 이 용어는 2차 대전 중 미국이 주도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때는 패스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주변 지역이 모두 공사현장이었는데, 저녁때 뉴저지로 돌아가기 위해 어둑어둑해진 그곳을 지나갈 때면 묘한 기분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약 3000명이 사망했던 사상 최대의 테러를 딛고 지어진 1 WTC는 날렵한 모습으로 새로운 뉴욕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 이리로 갑시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걷다 보니 큰 다리가 보인다.


'저게 브루클린 브릿지예요. 우리는 저걸 걸어서 건널 겁니다.'


'아니 왜요?'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묵묵히 다리를 건넜다. 유럽은 도시 내의 강폭이 좁아서 운치도 있고 다리를 건너는 게 어렵지도 않지만, 브루클린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한강의 다리만큼 길었다. 하긴 그래도 이 다리는 바다를 건너니까. 대체 한강은 왜 그렇게 거대한 걸까? 물론 거대한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 이제 덤보로 갑니다.'


나는 아기코끼리 덤보 밖에 몰랐지만, '그쪽으로 간다니 지역이나 건물 이름이겠지' 하면서 또 입을 다문 채로 따라갔다. 어쩌면 '도보'나 '속보'처럼 걷는 방식을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리를 건너느라 피곤해서 그렇게 걸을 처지도 아니다. 축 늘어진 채로 울퉁불퉁한 돌바닥 길을 따라가다 보니 빨간 벽돌 건물들 사이로 다리가 보이는 위치가 나왔다.


'우리가 건너온 다리가 보여요.'


'아니에요. 저건 맨해튼 브릿지예요.'


창피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교각의 색깔이나 주탑의 모양을 숙지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우리가 건너온 다리와는 다른 다리가 보여요' 정도였겠지.


'이 곳이 핫한 포토 스폿이에요. 사진을 빨리 찍자고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도대체 왜 이 곳이 포토 스폿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리 전체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빨간 벽돌 건물이 푸르스름한 다리 색과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것도 아니잖아. 건성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동료 중 하나가 이야기한다.


'저 교각 밑으로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위치시키는 게 핵심이래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맨해튼 브릿지의 교각 밑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옷'


그러고 보니 'Once upon a time in America'라는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봤었다. 갑자기 빨간 벽돌 건물들과 푸르스름한 다리 색과 환상적으로 어울려 보였고, 주변의 공기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 멋진데요?'


'그렇죠? 무한도전에서 이 곳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고요.'


무한도전? 다시 맨해튼 브릿지는 어울리지 않는 빨간 벽돌 건물 사이에서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이 근처에 뉴욕의 3대 피자집이 있어요. 이동하자고요.'


나는 미련 없이 카메라를 집어넣고는 그 뒤를 따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잘하는 것들과 넷플릭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