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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ug 12. 2018

한여름의 세차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요즘 차를 탈 일이 없어서 계속 세워두었더니 보닛 위로 먼지가 수북했다.


'오후가 되어 뜨거워지기 전에 세차나 할까?'


아침을 먹자마자 차를 끌고 집 근처 주유소로 가서 ‘세차 머신 가동 중’이라는 푯말 뒤쪽에 늘어서 있는 다른 차들 뒤에 줄을 섰다. 음악을 틀어놓고는 따라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된다. 앞바퀴를 자동세차기의 자동 레일 위에 얹고 시동을 끄니, 이내 차가 갈라진 크레바스(Crevasse)에 가라앉듯 어두컴컴한 세차 기계 속으로 스윽 빨려 들어간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물이 쏟아져 내린다. 드럼통 만한 솔은 차체 위에서 고속으로 돌며 계속 거품을 만들어 내고, 곧 다시 물이 쏟아진다. 수십 개의 마른걸레가 더벅더벅 회전하며 차의 물기를 흡수하고 나면, 동굴 끝의 빛이 보이고,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세차는 종료된다.

기계를 빠져나오는데 채 오분도 안 걸리다니, 누가 뭐래도 자동세차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아닌가?

주유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차는 언제 세차했냐는 듯이 바짝 말라 물기도 하나 없다. 그렇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차를 보니 갑자기 욕심이 나는데,


‘그래, 내부 세차까지 해야겠어!’


아직은 그늘도 깊고, 바람도 부니, 세차가 끝나면 아파트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좀 읽다 들어와도 좋을 것 같았다. 재빨리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얼음을 채운다. 충전된 청소기, 세차용 천, 읽을 책, 헤드폰과 버려야 할 쓰레기까지 - 두 번 왔다 갔다 하는 건 왠지 지는 것 같으니까 - 두 손, 옆구리, 입을 사용해 모두 들고는 위태위태하게 밖으로 나섰다.

놀이터 옆 주차장에서 차의 문을 활짝 열고는 - 오랜만에 Def Leppard의 Animal을 들으며 - 진공청소기로 차 내부의 먼지를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운전석과 조수석의 발판을 떼어 내 어린이 놀이터의 턱걸이 봉에 힘껏 탁탁 턴다. 화수분으로 무한 복제한 것처럼 더운 먼지가 끝도 없이 나왔다.

 

세차를 모두 마치고는 아파트 입구 옆 화단의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고,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주차장에서 화단 옆 벤치로 오는 동안 손도, 걸레도 모두 바짝 말라버린다. 여름인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찬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난 참 커피를 잘 타.’


그리고는 벌써 삼주 째 읽고 있는 책을 펼쳤다.


‘책도 참 잘 읽지.’


여름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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