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샌프란시스코의 애니스트리트에는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스타벅스가 있다.
오후 6시 정도에 지나가며 힐끗 쳐다보면 이미 이 곳은 마감인 밤 8시가 된 것처럼 어둑어둑하다. 입구와 윈도우에는 엄청 기다려야 한다느니 현금만 된다느니 하는 문구들이 할로윈 'Trick or treating' 표지판처럼 으스스하게 붙어있지만, 들어가서 '카드 사용 가능해요?' 하면 경쾌하게 '그럼요!'라고 상당히 뻔뻔스럽게 대답한다.
이 곳은 다른 스타벅스에 비해 좌석도 적고 면적도 작아서 커피를 주문하면 경고 문구와는 달리 커피가 30초 만에 사삭 나와버린다. 밖에서 보면 줄 서 있는 사람이 없는 게 보이는데도 샌프란 사람들은 순진하게 표지판만 보고 '많이 기다려야 한다니. 들어가지 않겠어.' 하는 것이다. 왠지 이 사람들이 좋아질 것 같다.
반면에, 그 안에서 일하는 네 명의 점원들 분위기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넘친다. 주문하는 내내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서로 걸레를 던지거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앗. 장난치지 마! 저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래요?' 할 때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석고상 같은 표정을 하고 복화술로 주문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상당히 크게 틀어놓는 게 맘에 드는데, 세로로 긴 구조 덕분에 소리가 예쁘게 울려서 마치 홀 라이브처럼 들린다. 음악 생각에 지나가다가 가끔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아마 앉은자리에서 사운드하운드로 바로 노래 제목을 얻어낼 수 있는 스타벅스는 지구 상에 이 곳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노숙자가 들어와 옆자리에서 자기 스마트폰 충전하려고 달그락 거리는 게 짜증 날 때도 있지만, 복잡한 마켓 스트리트에서 시끄러운 고독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역시 '애니스트리트의 스타벅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