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이전에서 계속...)
마침 옆 건물에 AT&T 매장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아이패드를 들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 미소를 짓는다.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 이름을 물어본다.
‘바로 가입신청?’ 너무 훅 들어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귀찮기도 하고, AT&T 정도면 괜찮을 것도 같아서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10번째예요!’ 한다. 동시에 뒤쪽 전광판에 대기순서 10번째로 올라오는 내 이름. 9명의 상담이 끝나야 내 순서인 것이다.
상담원은 내 이름을 등록한 후 천천히 다음 순서의 고객과 상담을 시작하는데, 그게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바로 궁금한 질문부터 시작하지 않고 마치 소개팅을 하듯 천천히 탐색해 나간다.
탐색도 좋지만 하나뿐인 상담원은 날씨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아직 인터넷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한국의 상담서비스에 익숙한 나는 몸에 사리가 생길 것만 같은데, 20분이 지나도 아직 전광판의 대기인원은 그대로 9명. 상담원은 드디어 날씨 이야기를 정리하고 인터넷 신청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가능 여부 확인을 위해 고객에게 거주하는 지역을 물었는데, 답을 하자마자 ”오! 그 근처에 사시는구나. 혹시 Tony’s Pizza 아시나요? 피자가 정말 맛있는데!” 한다.
그곳은 콜럼버스 애비뉴에 있는 유명한 피자집으로 얼마 전 나도 감탄하며 먹긴 했지만, 지금 맛집이 무슨 상관이람? 내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아서 옆 건물의 오피스 데포에 가서 별 관심도 없는 태블릿들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구경했다. 그중 하나가 너무너무 사고 싶어 졌을 때쯤 다시 AT&T 매장으로 돌아갔더니 거의 내 차례가 다가와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상담원의 여러 제안 중 내게 제일 적절한 제품은 다음과 같았는데,
인터넷 서비스(18메가): 사용료 50~60불 + 모뎀 리스 비용 10불 / 월 (최초 설치비 150불 별도)
상담원 말에 따르면 AT&T가 통상적으로 요금이 가장 높고, 다른 통신사들은 조금씩 더 저렴하다고 한다. 우선은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사실 더 알아보고 싶다기보다는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과 강제 종료.
그런데, 기적적으로 집 앞 우편함에서 같은 건물 거주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어!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과 비디오 게임을 같이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왔어요. 혹시 인터넷은 어떤 것 사용하세요?" 하고 물었다. 이게 인사인지, 질문인지 나도 헛갈렸지만, 인터넷만 해결된다면 이 건물에서 한 사람쯤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사람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천천히 미소 지으며 자신은 Comcast를 사용한다고 알려주었다. 이건 추천이 아니라 정답이잖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대충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 조금 살펴보니 Comcast는 홈페이지에서 바로 서비스 신청이 가능했다. 지체 없이 등록 작업을 시작했지만, 사회보장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페이지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나는 대한민국 주민번호 밖에 없다.
그 상황이 되니 인터넷은 이제 지긋지긋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AT&T든지, Comcast든지 뭐든 좋았다. 나는 사이트를 뒤져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시키는 대로 여권번호를 불러주고는 어카운트 넘버를 받아 적었다. 쉽진 않았지만 결국 무사히 39불짜리 25메가 서비스로 신청을 완료한 것이다. 모뎀 설치비가 150불인데 많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직접 구매해서 연결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정말 여기까지.
....
이틀 후 주문한 모뎀이 배송되어 와서 이전에 받았던 서비스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에게 모뎀 등록번호와 Mac Address를 불러주고 나니 드디어 인터넷에 연결된다. 마침내, 스타벅스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