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개봉도 하기 전에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죠. 물론 저도 그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심사위원상이나 감독상도 아니고 황금종려상이라니! 누가 뭐래도 칸 영화제 최고상이잖아요?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상을 받았다 해도 굳이 보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기득권자들의 평가에는 힘이 들어가 있잖아요? 일반 대중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현학적 기준을 만들어두고는 관객들에게 그 벽을 기어오르게 만드는 그런 것.
저는 평상시에 걷는 것 말고는 따로 운동도 안 하는 사람으로, 여가 시간을 즐기면서까지 희한한 논리로 쌓아 올린 담을 넘기 위해 힘을 쓰고 싶지는 않거든요.
조여정이 시사회 인터뷰에서 그랬죠. ‘봉준호 감독의 러브콜이라니!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닥치고 그냥 한다고 해야지!’ 했다고 말이에요. 저도 그랬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니 제목이 ‘기생충’이던 ‘미토콘드리아’ 던 무조건 봐야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저런 일 때문에 800만이 넘어선 오늘 에서야 볼 수 있었네요.
소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타이틀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까지, 구석구석 크림이 가득한 크림빵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크림빵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해 못하시겠지만...
이 절취선 아래로는 엄청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말 엄청나요.
‘기생충’은 이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관람했어서 여기저기 감상이나 해석이 넘쳐나는 영화입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빠져도 ‘뭐 이따위야?’하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 같지만, 리뷰의 클리셰를 따라 먼저 줄거리를 이야기해 보자면,
전원 백수였던 한 가족이 장남이 친구의 소개로 한 상류층 집안에서 고액과외를 하게 되고, 그는 그 집에 동생을 미술 선생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차례로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모두 그 집에 취직하게 된다. 이들의 뜻하지 않은 행운은 그 집에서 쫓겨났던 가사 도우미의 재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정도가 될까요?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은 캐스팅인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안목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이전에 이미 각자의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연교 캐릭터(박사장의 부인)는 그냥 평소의 조여정 그대로 아닌가요? 작전을 짜고 핵심 계획을 이행하는 것은 기우의 가족이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소재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연교라는 캐릭터죠. 그런 면에 있어서 조여정은 튀지 않게 그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해냈습니다.
물론 연기의 톤은 누구도 튀지 않고 모두 적절했는데, 이런 조화는 연기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역시 감독의 내공이 출중해야 기대할 수 있는 거죠.
고삐를 풀어놓으면 존재감 뿜 뿜 하며 스크린을 씹어먹는 송강호와, 가만히 두면 주눅 들어 스크린 안으로 말려 들어가 버리는 최우식이 같은 화면에서 노말 라이즈 되어 대등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네요.
초반의 전개는 스피디하며 흡인력 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다 보면 어느새 가족 전체가 박 사장의 집에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마치 오션스 일레븐 Ocean’s Eleven 혹은 나우 유 씨 미 Now You See Me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고 경쾌하죠. 하지만,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가고 그 집에서 기우의 가족들이 술파티를 벌이는 모습에 도달하면 관객들은 점점 조마조마해지는데요. 그때 초인종이 울리며 쫓겨난 도우미, 문광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극적으로 장르가 전환되어 버립니다. 관객은 이 부분에서 극도의 긴장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열리며 - 마치 아이유 ‘좋은 날’의 삼단 고음처럼 - 상상도 못 했던 전율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죠.
창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마치 설국열차의 꼬리칸 같은 지하 공간이 있고, 그 안에는 이 영화를 어둠의 스릴러로 이끄는 ‘기생충’의 골룸, 도우미의 남편이 있습니다.
이 역할을 연기했던 박명훈은 칸 영화제에도 다른 배우들과 함께 갔었지만, 영화의 중요한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늘 숨어 다녔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혼자 소외되었다니 불쌍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긋하게 혼자 프랑스의 밤거리를 걸으며 여유를 즐겼을 테니 나름 좋았을지도 몰라요. 모르는 게 아니라 좋았겠죠?
이선균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메인 캐릭터 중 스크린 점유율이 가장 낮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클라이맥스에서 그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조여정만큼 영화 전반에 걸쳐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데칼코마니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그의 순간 싱크로율은 그녀를 상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니컬한 표정은 이선균 말고는 떠오르지도 않네요. 솔직히 그냥 웃어도 비웃는 것 같...
그건 그렇고, 주인공 전부 인터뷰할 때 보면 -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는데 - 박소담 양, 너무 예쁘지 않나요? 아님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