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할머니 신드롬

소셜 미디어의 가치와 지향점

by Aprilamb

얼마 전 친구들과 각자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면 씻자마자 누워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큐레이팅 되는 클립들을 끝도 없이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 있었죠. 친구들이 추천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대부분은 알고 있을 걸요?


'Bj엣지님 알아?', '그럼! 아프리카 여신으로 시작한 화석 크리에이터.'

'라이너의 컬쳐쇼크', '철저한 비판을 목적으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Route 9 추천이야.', '보스턴의 IT 트렌드 분석 유투버. 나도 구독 중이야.'

'집마 홀릭TV', '게임 소개 관련 크리에이터 중에 클립 퀄리티는 가장 높을걸?'

'박막례 할머니 알아?', '....'


내가 모르는 유투버가 있다니. 그날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에서 '박막례 할머니'를 검색했습니다. 검색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화면에 나란히 줄을 서는 엄청난 양의 영상들. 그런데, 영상들의 썸네일에는 젊어 보이지도, 미모가 뛰어나지도 않은 -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 그냥 흔한 할머니가 계십니다. 도대체 왜 인기가 있는 거죠?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검색된 여러 클립들 중에 하나를 플레이시켰습니다. 알라딘 영화를 보고 난 리뷰였어요.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지만, 노인을 희화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생각이 좀 복잡해졌어요.


조금 더 살펴볼까 하는 생각에 리스트 아래로 스크롤시켜보니 구글의 CEO인 선다 피차이(!)와 만나기도 했고, 유튜브의 CEO, 수잔 보이치키는 할머니를 만나러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저 정도의 재미를 주는 크리에이터들은 정말 해운대의 모래알만큼 많을 텐데 말이죠. 저는 갑자기 이 할머니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


박막례 할머니는 올해 72세가 되신 그냥 보통 할머니입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일하시고, 남은 것이라고는 신경통과 노안뿐인 흔한 할머니죠. 그런 할머니는 3년 전 병원에서 치매 징조가 보인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할머니에게는 김유라 씨라는 손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할머니를 위해 여러 치매 관련 논문이나 서적을 닥치는 대로 찾아봤다고 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어떤 논문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합니다.


'치매는 의미의 병으로, 내 존재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뇌세포도 점점 감소된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기 위한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고, 호주에서 여러 새로운 경험을 했던 할머니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유튜브는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입니다. 처음 채드 헐리, 스티브 첸, 그리고 조드 카림이 유튜브를 구상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자신들의 소중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리적 매체를 사용하지 않고 영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요.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 플랫폼을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점점 광고수익이나 협찬을 통해 큰돈을 버는 사용자들이 늘어갔고, 크리에이터는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꿈이 '유투버'인 아이들도 점점 늘어났고요.

콘텐츠는 '좋아요' 수로 노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크리에이터는 '구독자' 수로 영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 수익과 연결되죠. 그 이유로 크리에이터들은 보다 많은 '구독자'를 끌어들이고, 하나라도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 점점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게 되었어요. 목적성을 가진 콘텐츠들은 사회를 양극화시키거나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이 유튜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소셜 네트워크의 중심은 사용자들이고, 그 가치는 바로 그 사용자들이 생산해내는 콘텐츠가 만들어냅니다. 소셜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단지 플랫폼만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건강하고 의미 있는 콘텐츠들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돕는 책임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해당 소셜 네트워크의 성장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 조건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서비스의 매니지먼트가 그들 서비스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구성원 전체가 그것을 쫓도록 해야 하는 거죠.


선다가 구글 I/O에서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고, 수잔이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방문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박막례 할머니의 콘텐츠가 유튜브의 존재가치와 지향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거죠.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삶의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기특한 손녀와, 70을 넘어선 황혼기에 자신의 자아를 다시 되돌려 받고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요?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할머니의 클립들이야말로 유튜브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서비스에 담고 싶었던 바로 그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박막례 할머니의 콘텐츠는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선을 제시합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사상과 언어의 특성(존댓말),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되어 깊숙이 뿌리 박힌 세대 간의 갭이 있죠. 덕분에 나이와 상관없이 편하게 소통하는 외국과는 달리 세대 간의 소통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요. 고정관념에 의한 선입견은 아예 경험의 기회를 차단하기 때문에 그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콘텐츠 안에서는 노인과 젊은 세대가 어떤 거리감도 없이 서로 존중해주고, 다독여주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유튜브 구독자들은 할머니의 영상을 보면서 세대 간의 소통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려운 게 아니구나.' 하게 되는 거죠.


얼마 전 발간된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보면 할머니께서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외국인 조종사 참 친절하더라. 내가 못 알아먹어도 계속 말 걸어주고, 나를 감동받게 하더라.

그게 뭔 감동이냐고? 나이 들면 말 걸어주는 게 감동이여.'


....


뉴스에서는 각박한 이야기들만 쏟아지는 요즘,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들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