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의 뮤지션, 윤상의 ‘이사’
윤상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음악계의 거장이죠. 90년에 ‘이별의 그늘’로 데뷔를 했으니 거의 30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듀란듀란의 존 테일러(베이시스트)를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 악기를 만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윤상은 뛰어난 베이시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릴 때의 영향이 정말 중요하긴 한가 봐요.
히트한 곡들은 대부분 발라드지만, 윤상은 신스를 사용한 디지털/테크노풍 뮤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학을 가서 학부 졸업 이후 NYU 대학원에서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까지 마치면서 전체적인 사운드 프레임웍을 디자인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네요.
윤상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공간을 정말 빼곡하게 소리로 채우고 있어 놀라게 됩니다. 마이너 코드를 주로 사용하는 그의 음악은 마치 어두운 유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약간 여백이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제겐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긴 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은 스피커 앞에 있거나 고가의 이어폰을 사용할 때에는 늘 윤상의 곡을 먼저 걸어봅니다.
요즘 윤상의 곡이라면 비교적 최근 곡인 ‘그게 난 슬프다’를 자주 듣는 것 같아요. 요즘 곡들은 점점 더 트랙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듣고 있으면 - 귀는 호강하지만 -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이 곡은 비교적 여유도 있고 멜로디에 집중하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윤상의 올타임 베스트는 그의 네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이사’죠.
이 곡은 일본의 전문 삼바 팀인 발란사 Balança와 같이 녹음한 라틴 풍의 음악입니다. 국내에서 까바끼뉴(우쿨렐레 비슷한 악기)와 빤데이루(탬버린 비슷한 브라질 타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이 많지 않을걸요? 거기에 보컬을 얹은 메인 멜로디는 우리 발라드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 곡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가사예요. 윤상의 오랜 파트너인 박창학은 가슴 아픈 연인과의 헤어짐을 담담하게 이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이 날씨가 좋은 날 아침이라면 이것만 한 곡이 없을 걸요?
낮게 깔린 구름이 파란 하늘 뒤쪽으로 사라지기 전에, 어서 빨리 들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이사
이젠 출발이라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한낮의 햇빛이 커튼 없는 창가에 눈부신
어느 늦은 오후
텅 빈 방 안에 가득한 추억들을
세어보고 있지 우두커니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너의 기억들을
혹시 조금 남겨두더라도
나를 용서해 날 미워하진 마
녹슨 자전거 하나 겨우 몇 개의 상자들
움켜쥔 손에는 어느샌가 따듯해진 열쇠.
그게 다였는지...
결국 다 그런 거라고
내 어깨를 두드려 줄 너는 어디 있는지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너의 기억들을
혹시 조금 남겨두더라도
나를 용서해 날 미워하진 마
전부 가져가고 싶어
곳곳에 배인 너의 숨결까지
손때 묻은 열쇠 두 개가
닫힌 문 뒤로 떨어지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