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샌프란시스코와 삼겹살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모처럼 고기가 먹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서울에서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삼겹살이 가장 자주 생각이 나는데, 사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것을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일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으려면 물론 몇 개 안 되는 한국식당을 찾아 나서야 하겠지만, 일반 마트 내 그로테스크하게 진열되어 있는 고기 코너 포장육 더미를 뒤지다 보면 Pork belly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제품이라도 그램수에 따라 보통 5불에서 10불 사이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혼자 먹을 것이니 ‘대충 제일 그램 수가 작은 것을 사야겠어’라고 생각하고는 4~5불 언저리의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했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품질은 동일하고 단지 그램 수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게 좀 이상한 것이 집에 와서 바로 구워도 왠지 서울에서 먹던 삼겹살 맛은 나지 않는다. 단지 구운 고기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심심한 맛인데, 모양조차 내가 익숙한 그 지글지글 삼겹살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서울에서 먹던 삼겹살들은 화초를 먹여 키웠다던가(아니 녹차였나) 식후 홍차를 마시게 했다던가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찍어 보내줬다가 ‘세상에서 제일 맛없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꽤 의기소침해졌던 기억도 있다. 모양 만으로도 낙제점인 것이다.

며칠 전 다시 삼겹살이 먹고 싶어서 흉내라도 내야겠다 싶어 다시 마트에 갔었다. 물론 지난번과 동일한 곳에서 동일한 상표의 포장육을 뒤지다가 이번에는 9불짜리 양이 많은 것을 선택했고, 배가 좀 고파서 그 정도는 왠지 먹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오자마자 대충 칼로 슥슥 잘라 프라이팬 위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달궈진 불판 위에서 삼겹살들이 지방성 육즙 생산에 여념이 없는데, 한참 보다 보니 모양이 이전에 구웠던 삼겹살들과 조금 다르다. 뭔가 익숙한 비주얼인데, 마치 차이나타운에서 한국말 하는 사람 옆을 지나치는 기분이랄까. 그랬다.


'오랜만이야. 긴 시간 보지 못했지?'


오기 직전에 삼겹살을 먹었었으니, 거의 세 달 만인 것 같다. 낼름 집어서 참기름 살짝 걸친 소금에 찍어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맛있어!


이럴 수가 있나. 일주일 만에 미국의 FDA에서 서울의 삼겹살을 벤치 마킹하고 특정 모양과 맛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낸 후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시장에 전혀 새로운 Pork belly를 선보였을 리는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때는 상당히 감동해서 맥주까지 꺼내서 함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물론 맥주는 잘못 골라서인지 맛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공급자도 같고 단지 그람 수만 달랐던 고기가 서로 맛이 달랐을까. 물론 전자와 후자에 희생된 돼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맛이 다른 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 뭔가 숨겨진 업계만의 비밀스러운 프라이스 프레임웍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

아무래도 생산자의 입장에서 접근해보면 고기 몇 그람으로 가격 차이를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김밥 10개와 김밥 11개의 차이라고나 할까.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한 개 더라고? 너무 양이 많아 배가 터지면 어쩌려고'할 수도 있지만,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한 개 더 들어간 건 그냥 가져가슈'하게 되는 것이다. 구매자를 위해서 차별화를 시키긴 했지만, 대량 생산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원가차이가 크게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음 우선 자 이건 Pork belly 중에서도 제일 좋은 부위잖아. 이걸로 우선 10불 정도 되는 덩어리를 만들어 볼까'하고는 턱턱 장인처럼 그람 수도 재지 않고 800그람짜리 덩어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게 대충 덩어리들을 만들고 나면, '아 이제 대충 남은 부위들로 5불 언저리를 채워볼까' 하면서 남은 뱃살 주변 고깃 덩어리들을 정리해서 500그람씩 나누어 담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이봐. 마트에 가면 반드시 10불짜리 양이 많은 것을 선택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삼겹살 언저리 잡고기를 먹게 될걸?'하고 알려준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 주변에 푸줏간을 하는 친구나 친척이 없는 게 왠지 억울해진다. 어쨌든 이렇게 하면 나름 공급자의 논리로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손님에게 더 양질의 Pork belly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생각해낸 것이지만 왠지 그럴 듯 해. 앞으로는 계속 10불짜리로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거 혹시.. 낚인 건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샌프란시스코의 미스터리..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