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prilamb Jan 19. 2020

겨울다운 겨울의 소멸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며칠 전 함박눈이 내렸고, 그 후 날씨가 풀려서 길이 질퍽질퍽했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길이 온통 얼음판이다. 그 상황에 나도 얼음이 되어 있는데, 질퍽하던 모습 그대로 윤기 나게 얼어버린 길바닥이 내게 말을 건넸다.

‘오늘 난이도는  정돈데, 괜찮겠어?’

물론 괜찮지 않았다. 정확히 세 걸음 걷다가 누워 땅에 등 대고 하늘을 쳐다볼 뻔했으니까. 며칠 전 창밖으로 눈 내리는 걸 볼 때는 십수 년 동안 외국에 나가 살던 오래된 친구를 공항에서 맞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귀대하는 날만 기다리는 휴가 나온 말년 병장 아들내미 같다.
“저 웬수는 친구도 없나? 왜 방구석에서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는 거지?” 하는 느낌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은근히 짜증이 솟구쳐왔다.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그렇다. 진퇴양난이라는 숙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내가 만들었으리라.

——-

몇 년 전 오늘 저런 글을 끄적거렸는데, 지금 보면 꽤 낯설다. 이전에는 겨울이면 얼굴이 얼어붙을 정도로 춥거나, 길바닥이 스케이트장처럼 얼어 붙거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거나 했던 날들이 꽤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겨울이 오자마자부터 ‘내일부터 추워지면 어쩌지?’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어느새 봄이 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춥다고 얼굴을 목도리로 감싸지도 않았고, 딱히 눈을 본 기억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올해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게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내가 비교적 추위를 잘 견디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겨울다운 겨울을 다시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거다. 겨울다운 겨울이 좋은 거냐고 물어보면 또 고민은 되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