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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an 16. 2020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재작년 겨울이었을 거다. 카페 마니아인 친구의 인스타를 습관처럼 들여다보다가 고목의 안쪽을 긁어내고 그 안에 차린 듯한 미니어처 같은 카페를 발견한 게 말이다. 친절한 친구는 포스트에 카페의 위치까지 올려두었고, 나는 호기심에 그 위치를 확인했었다. 왠지 서울은 아닐 것 같았으니까. 피터팬의 네버랜드? 앨리스의 원더랜드? 아니면, 해리포터의 호그스미드? 하지만, 그 장소는 서울이었고, 심지어는 우리 집에서 가까웠다.


그 주 주말, 자전거를 타다가 문득 그 카페가 생각나서 한참 머릿속을 더듬어 찾아갔더랬다. 간판도 달려있지 않아서 앞만 보고 걸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만큼 작은 카페.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는 그곳에 들어가 인스타에서 봤던 크림 라테를 주문했다. 창가 앞 나무 의자에 앉아 들고 간 책을 들었지만, 벽의 통유리를 통해 손등에 떨어진 겨울 햇살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그 눈부셨던 햇살과 적당히 딱딱했던 나무 의자는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 잔을 놓는 소리, '슉슉' 커피 뽑는 소리 그리고,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나자 내 테이블 앞에는 눈꽃 같은 크림 라테가 놓여있었다. 티 받침까지 눈처럼 덮어버린 코코아 파우더 덕분에 크림 라테는 마치 눈 내린 산속 풍경 디오라마 같았고, 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었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가끔 바깥에서 길고양이와 이야기를 하거나, 카페 안쪽에 먹이를 놓아주었다. 카페는 애견 동반이 가능해서 반려견과 함께 온 손님을 종종 볼 수 있었고, - 간판은 없었지만 - 국경일에는 늘 국기를 게양했다.

오픈 시간이 내 자유 시간과는 차이가 있어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맞을 때면 책과 랩탑을 들고 숲 속 같던 그곳을 찾았다. 왠지 책은 집에서는 잘 안 읽히니까. 책을 읽다가 싫증 나면 랩탑을 열고 키보드를 꾹꾹 눌러가며 쪽글을 썼다. 그 안은 바깥과는 다르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고, 늘 따뜻했다. 낮에 봐도 반갑지만, 저녁에 지나다가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안이 되던 장소. 이 카페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그제 오픈 시간을 알리는 카페의 인스타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그 포스트에서 사장님은 내일 카페의 문을 닫는다고 했고,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에 '이 봐요. 이제 지구에 더 이상 크리스마스는 오지 않는다고요.' 하는 말을 들은 것처럼...


저녁때 잠깐 들러보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약속이 있었고,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더 이상 카페가 존재하지 않는 아침이 오고 말았다. 이제 봄이 와도 카페 창밖에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를 볼 수 없을 테지. 물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코코아 파우더 가득한 크림 라테도 마실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하던 일상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그런 건 아마 죽을 때 까지도 익숙해지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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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골목을 예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멋진 날이 계속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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