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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구이 닭 국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요즘 이런저런 바쁜 일이 많아 신경 써야 할 곳에만 최소한으로 신경 쓰고 나머지는 다 뒷전이다. 먹을 것도 대충 거르거나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 등으로 때운지도 이삼주는 된 것 같다. 오늘도 밖에 다녀 올 일이 있었는데 만사가 귀찮아 저녁도 안 먹고 집에 들어와버렸다.

사실 오늘은 먹고 싶은 것이 있긴 했다. 하도 오랫동안 국물 없는 음식들만 먹었더니 순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어. 하지만, 그런 것을 파는 곳도 근처에 없고, 있다 해도 돌아 들렀다 오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뭐 해먹으려고 사둔 것이 다 떨어진 것을 알고 있어서 냉장고도 안 열어보고 대충 내일 아침에 샌드위치나 큰 걸로 먹어야지 했는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참 사람이라는 게 비효율적이구나' 생각하면서 어슬렁 얼려둔 밥에 김치나 해서 대충 때우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런데, 두 달 전 닭이 먹고 싶어 사 왔다가 칠면조만 크기에 질려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살 다 뜯어 냉동실에 여섯 봉지로 나누어 담아 얼려둔 것이 보였다.


엄마가 해줬던 닭국이 먹고 싶어


얼린 닭 한 봉지를 꺼내고, 대충 물을 냄비에 반쯤 채워 끓이기 시작했다. 냉장실에서 다 말라비틀어진 파 두 개를 꺼내어 시든 부위를 뜯어내고는 송송 잘라 냄비에 넣어주었다. 역시 오래전에 사두었지만 뚜껑도 열지 않았던 다진 마늘 오늘은 너도 사용해주겠어. 찬장의 소금을 꺼내어 탈탈 너 다섯 번 힘껏 털어 넣어 주고, 누군가가 양념은 두 가지 이상을 쓰라고 했던 것 같아 간장을 정말 아주 조금만 넣어 주었다.

닭 국물이 우러나려면 좀 오래 끓여야 할 것 같으니 밥도 해줄까. 한 공기 정도 분량의 쌀을 담아 촙촙 씻어준다. 이번 쌀은 일본 쌀과는 달라서 물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물에 오래 담가 두지 않으면 밥이 설익는다. 담가둘 시간이 없으니 물을 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살짝만 돌려주자. 바로 꺼내 밥솥에 넣고 가동 버튼을 누른다.


부엌에서는 늘 번잡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기다리는 일만 남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거품을 세고 있거나, 밥솥에서 나는 연기에 얼굴을 대고 있거나, 아까 이미 본 간을 다시 보거나 하면 된다. 그러고 있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다시 바빠지는 때가 돌아온다.


밥이 참 잘 되었네


어머니께서는 늘 밥이 잘되면


‘밥이 참 잘 됐어’


하고 이야기했었다. 그때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흰 김을 휘휘 날리며 주걱으로 밥을 들어내 밥공기에 담으면서 그것이 질지도 설익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그런 행복한 기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난 이런 걸 앞으로 다섯 번 더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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