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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의 드라마 버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 홀로 그대'

by Aprilamb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주말에는 집에만 있게 되더라고요. 사실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도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조건만 갖춰진다면 겨울잠도 너끈히 잘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역시 '나가지 않는 것'과 '나갈 수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거죠. 덕분에 주말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시계를 쳐다보며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단 말이야?' 했었는데, 그래도 넷플릭스 덕에 무사히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그게 좋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음)


사실 넷플릭스에서 진득하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메인 화면부터 넘쳐흐르는 영상물의 타이틀과 썸네일에 압도되어 감상도 하기 전에 지쳐버리지 않나요? 특히 별다른 추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한두 시간 때워보려고 넷플릭스를 찾은 경우라면... 어휴~ 배달 앱 안에서 주문할 음식을 고를 때처럼 난감하기 짝이 없다니까요.(음식은 먹어본 적이나 있지) 고르다가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면 이게 목표 달성을 한 건지, 아닌지도 애매한 거죠.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코로나 19 관련 정보로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져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로그인하자마자 메인화면에 대문짝 만하게 보였던 신착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나 홀로 그대'를 바로 클릭해서 보기 시작했다니까요?


시놉시스도, 감독도, 배우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를, 저는 이틀 동안에 끝내버리고 말았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그냥 그랬고, 이미 많이 돌려먹은 소재인 데다가, 스토리의 개연성도 부족하고, 액션의 긴박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아직도 중간쯤에서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있는 주옥같은 드라마가 한둘이 아닌데, 저는 왜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한 걸까요? 정말 알 수가 없네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무언가가 살아있다는 것, 혹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하는 것이 그거예요. 유기체라면 역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 숨을 쉰다던지, 심장이 뛴다던지 하는 것들 - 이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사람 수준의 인공지능이 일반화된다면, 우리는 '살아있다'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단지 '로봇'이라는 객체에 독립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명이 다한 인간의 무언가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해 연장되는 경우를 정의하기 위해서 말이죠.

드라마에서 처럼 로봇이 사랑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스스로 판단을 해서 소멸을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흉내'를 통한 '속임수'의 영역이며, 인간의 그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언가가 목숨이 다한 이후에도 남겨져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건 뭘까요?


저는 그게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의 외형이나 버릇도 나를 정의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겠지만,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억(혹은 추억)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극 중에서 A.I인 홀로가 과거를 함께 했던 주인공들을 위해 '자신의 소멸'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는 건, 그 순간만큼은 그 A.I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느꼈던 것은 홀로가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든, 누구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을, 빈데 투성이인 이 드라마를 꾸역꾸역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필모그래피라고는 ‘롤러코스터' 밖에 모르는 배우 고성희 씨의 엄청난 몸매 때문이라고 해두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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