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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r 06. 2020

책을 읽는 자세에 대하여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책을 읽을 때의 정신적인 준비 자세가 아닌 - 딱히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 말 그대로 정말 책을 읽는 물리적인 자세에 대해 논하고 싶은데, 그전에 먼저 책을 읽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보통 책을 읽는 장소에 따라 독서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가장 많이 책을 읽게 되는 곳은 지하철이다. 그곳에서는 -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 딱히 다른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책을 꺼내 들게 된다. 요즘에는 손바닥만 한 전자책 뷰어 덕에 두껍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으니 더 그렇다.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서있을 때 들고 보기에도 크게 부담이 없다. 요즘은 전용 뷰어가 아니더라도 매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리더 앱만 깔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물론 화면이 작아서 암기용 영단어 카드를 보는 느낌이겠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단어를 만나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지하철 다음으로 자주 책을 읽게 되는 곳은 역시 집인데, 편한 집보다 지하철에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평소에 책을 읽는 장소를 꼽아볼 일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빈도를 카운트해보고는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취미가 독서밖에 없나 싶을 것도 같은데, 그냥 딱히 집에서는 책을 잘 읽지 않는 것뿐이다.(책도 많이 안 읽으면서 독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왜 지하철에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 확실한 정답까지는 아니겠지만 - 대충 감이 잡히는 것은 있다. 바로 책을 읽는 자세 때문이라는 것.

지하철에서는 서든 앉든 대부분 척추의 중립을 유지하고, 만곡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바른 자세를 유지한 상태에서는 뭘 해도 크게 부담이 없으니, 책을 읽든, 유튜브를 보든, 게임을 하든 모두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어떤 리듬게임의 최고 기록을 세운 곳도 지하철이었고, 간짜장 짜파게티 레시피 동영상을 보는 대로 바로 체득해 버린 곳도 지하철이었다.(그날 저녁 시도했을 때 이상하게 짜장이 타긴 했지만)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뭘 하든 우선 눕게 된다. 집에 있을 때 바닥에 가깝게 몸을 유지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를 보게 되는 것 같으니까. 도서관 바닥이 깨끗해 보여도, 사무실 카펫이 포근해 보여도, 길바닥의 아지랑이가 푹신해 보여도, 그곳에 누울 수는 없다. 어쨌든, 그렇게 집에 들어와 눕게 되면, 또 뭘 해도 이내 잠이 온다. 독서량에 대해서는 집이 지하철에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그렇게 독서를 하다가 졸려서 책을 덮고 싶어 지면 상당히 난감해진다. 책을 읽던 자리를 표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책갈피까지 준비하면 참 좋겠지만, 그래 본 적은 한 번도 없다.(사실 책갈피도 없다) 그렇다고 페이지 귀퉁이를 접는 몰상식하고 천박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은데,  일단 그때쯤 되면 눈이 감겨서 책장 사이에 끼워 둘 나뭇잎을 따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여기서 나만의 방법을 소개하고 싶어 지는데, 나는 주변의 침대보, 쿠션, 베개, 이불, 수면양말 등에서 아주 작은 보푸라기나 먼지를 찾는다. 보푸라기를 뜯어낼 수 있다면 완벽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주변을 훑으면 작은 먼지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찾아냈다면 그것을 읽고 있던 책장 사이에 끼워두고 편안하게 잠들면 된다. 상상만으로는 그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겠지만, 몇 번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유용해서 '좋아요'라도 해주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괜히 한참 읽어 내려가다가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 문장을 만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한번 시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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