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시스코 생존기
캘리포니아라면 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와인용 포도가 익고 있고 오렌지가 사계절 단맛을 자랑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겨울에도 낮에는 가끔 따뜻한 햇살에 입은 외투가 부끄러워지기도 하긴 하지만, 역시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월등하게 많고 목도리를 둘둘 말고 다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도 겨울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기후의 특성상 그늘에 있거나, 밤 혹은 아침에는 상상을 초월하게 싸늘해서 장갑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적도 있을 정도다. 물론 낮이 되면 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낮은 대충 영상 15도 정도로 한국의 약간 싸늘한 가을 날씨와 비슷하며, 밤에도 영상 8도 정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영하 15도를 들락날락 거리는 한국에 비하면 겨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도 만만치는 않아서 겨울을 계절의 하나로 포함시킬 수 있는 든든한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해지는 시간으로 오후 네시만 되면 주변이 어둑어둑해져서 밤을 좋아하는 나도 왠지 적응이 잘 안된다. 뭔가 하루의 1/3을 고스란히 악마에게 바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더 짜증 나는 건 그 순간을 매일매일 눈 앞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계절을 3/4이나 보냈으니 남은 기간은 날마다 하루에 1/3씩 반납해줘야겠어!!
이런 것이다. 점심 먹고 조금 멍하게 있다 보면 주변의 빛들이 순식 간에 사라져버리는 시기가 오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낮을 보내야지 하게 되는 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뒤 쪽에서 쫓아오는 괴물을 피해 도망치는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만 더 낮이 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비인데, 여름에는 비가 내리는 것을 정말 보기 힘들고 온다 해도 한참 생각해야 인지할 수 있다.
이 주변의 습기가 비일까. 안개일까. 아 안개구나.
'하지만 비였습니다.' 이런 식이다. 반면에 겨울에는 일주일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호주는 '한여름에 웬 크리스마스냐'하고 불평한다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해도 일찍 져버린 상태에서 계속 비가 내리면 이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큰 우울함을 느끼게 되는데, 다른 지역들보다 한층 화려한 계절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이유로 처음에는 '아 지긋지긋하다'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사람이라는 게 간사해서 바로 적응해버리고 '이것도 나름 괜찮은데?'하게 되는 때도 있으니 세상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