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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y 20. 2020

샌프란시스코와 '못생김에 대한 법률'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느라 고생하다가 어느 정도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쯤이었을 거다. 주변의 집들이 하나같이 모두 낡았는데도 새로 짓지 않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유산인 베네치아의 구시가지처럼 수리를 할 때마다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법률이 이곳에도 똑같이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곳의 알라모 스퀘어 뒤쪽에는 빅토리안 양식의 집 일곱 채가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이 집들을 Painted ladies라고 부른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나다닐 때마다 매번 보긴 했지만, 주변에도 비슷한 집들이 많아서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

사실 Painted ladies는 빅토리안 양식으로 지어진 집을 일컫는 말로 <Painted Ladies – San Francisco’s Resplendent Victorians>라는 제목의 책에서 처음 샌프란시스코의 빅토리안 풍의 집에 해당 표현을 사용한 이후, 미국 전역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포탈에서 ‘Painted Ladies’로 검색을 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알라모 스퀘어에 죽 늘어서 있는 집들의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 실제로 보면 볼품없는 - 집들은 꽤나 유명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스폿 순위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오래된 집의 보수작업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면 지금처럼 사진 검색 결과에서 늘 같은 모습을 만나볼 수는 없지 않았을까? 그 집들은 실제로 보면 엄청나게 낡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키워드로 꽤 오랜 시간 검색을 해봤지만 결국 그런 법률을 찾지는 못했고 - 찾지는 못했지만 있을 수는 있음 - 대신 다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었는데, ‘못생김에 대한 법률 Ugly Law’이 그것이다. 18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까지 미국에는 'Ugly Law'리는 것이 존재했는데, 이는 보기 흉한 사람들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을 금하는 법이었다고 한다. 이는 홈리스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었는데, 18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다고 한다.(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발감이 낮은 샌프란시스코 답다) 하지만, 법의 이름이나 내용에 대상을 명확히 명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좀 못생긴 것 같은데…’ 하면서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사람도 한두 명쯤은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는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에 홈리스가 넘쳐나는데, 그 법 제정 이후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아마도,


‘민주주의 국가에 이게 무슨 엿같은 법인가! 당장 ‘Ugly Law’를 철폐하고 홈리스에게 기본 의료보험과 뮤니(샌프란시스코 버스) 무료 탑승을 보장하라! 특히 마켓 스트리트(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항상 홈리스와 일반인의 비율이 50:50을 유지하도록 법률을 제정하여 모두가 함께 사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규제하라!'


하며 홈리스의 체 게바라 같은 인물이 위와 같은 주장을 관철시켰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마켓 스트리트의 일반인과 홈리스의 50:50 룰은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으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홈리스에게도 기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버스의 무료 탑승도 보장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홈리스 정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에 걷는 홈리스 법인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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